[연재소설/붉은 도끼[24]]4부. 아름다운 호수 (2) - 글 : 김태환
홍옥석이라는 말에 당장 달려가겠다고 했다. 가능하면 홍옥석 광산에도 찾아가보고 싶었다. 재수가 있으려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색감 좋고 덩치도 있는 홍옥석 원석을 구했으면 했다. 김인후는 전보다 더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았다.
“선생님의 장편소설을 밤새워 다 읽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더군요. 보통분이 아니라는 걸 알겠더군요. 선생님이라면 우리 작은 할아버지 이야기도 멋지게 써 주실 것 같습니다.”
내 소설이 재미있다고 하는 말을 듣는 것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재성씨의 이야기를 멋진 소설로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없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소설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 운명처럼 엮어져 있는 굴레를 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김인후는 자기 차에 나를 태우고 하동 마을로 갔다. 미호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다보면 다시 고속철도 교각 아래를 지나야 했다. 마침 다리 아래를 지나는데 고속열차가 지나갔다. 차 안에서도 섬뜩한 굉음이 몸을 흔들었다. 홍옥석을 구해 놓았다는 노인의 집은 고속철도를 지나 하동마을의 첫 번째 집이었다. 노인은 마당에서 벼이삭을 훑고 있었다. 콤바인이 벼를 베고 남은 자투리에 남아있는 벼이삭을 낫으로 베어와 손으로 낱알을 훑고 있었다. 내가 찾아온 용건을 말하자 간이 상수도 가에 놓아 둔 홍옥석을 가리켰다.
“저기 있구먼요. 필요하면 가져가시오.”
김인후가 수돗가에 있는 커다란 돌덩이를 들고 왔다. 축구공만한 크기의 돌은 제법 무게가 있어 보였다. 나는 돌을 어떻게 구했는지 물었다. 노인은 올해 큰 장마에 제방이 무너질 정도로 큰물이 졌다고 했다. 물이 빠진 다음 무너진 제방 아래에서 주워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옥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인은 1960년대에 부산사람들이 백운산에서 홍옥석을 캐냈다고 했다. 자신의 나이는 80세인데 일제강점기에 광산개발을 한 이야기는 모른다고 했다.
“그땐 먹고 살기가 팍팍해서 지게질을 했다오. 이렇게 붉은 돌을 지게에 가득 지고 내려오면 일당을 주었지요. 그때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었으니까.”
노인이 기억하는 것은 분명 일제강점기가 아닌 60년대의 이야기였다. 년도는 기억하지 못해도 박정희 대통령시절이라고 했다. 지금 광산이 있던 위치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저수지 위쪽인 것은 확실한데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더 이상 노인에게 얻을 정보가 없었다. 노인에게 돌 값으로 3만원을 건네주니 깜짝 놀라며 황송해 했다. 불편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마루 위에 놓아둔 늙은 호박 한 덩이를 내어 주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5만원을 드릴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