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그해 여름에도 용문산에 뻐꾸기가 울었지

2024-06-21     경상일보

6월 초여름 내가 사는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의 아파트에서 이따금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럴 때면 1966년도 6월 용문산에서 울리던 뻐꾸기 소리가 생각난다.

1966년 3월14일 입대해 군번을 받고 논산훈련소에서 6주 신병 교육훈련을 이수했다. 이어 전북 익산 금마에서 다시 4주간 자동소총사수 훈련을 끝내고 5월 말 경기 양평역에서 특별 배차된 군용기차를 타고 내린 후 사단 보충대에 도착했다.

기차 안에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 총리의 명의로 된 사과상자가 통로에 가득 실려 있었다.

보충대에서 2일간 신체검사를 받고 방역주사를 맞은 뒤 다시 배치된 곳이 바로 9사단 29연대 2대대 7중대였다. 2751부대라고도 했다. 이곳이 용문산이 있는 곳이다.

그해 9월18일 월남으로 가기 위해 양평역을 떠나기 전까지 전쟁을 위한 혹독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6월 논밭을 누비며 전투훈련을 할 때 뻐꾸기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훈련을 마친 뒤 월남 출발을 앞두고 서울에서 부대 환송식이 있었다. 완전군장을 하고 양평역에서 서울까지 와서 국민적 환송을 받았다.

9월20일 부산항에 도착하여 미 수송선에 승선하고 환송식을 마친 뒤 부산항을 떠날 때 우리 해군 함정이 상당 거리를 같이 따라오고, 멀어져 가는 미 수송선에 탑승한 우리를 보며 “백마여 이기고 돌아오라”를 확성기를 통해 몇 번이고 외쳤다.

우리 젊은 청년 군인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고국 산천을 멀리 두고 남지나해를 지나 남쪽으로 남쪽으로 달려나갔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을 하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세월이 흘러 이제 80대의 노인이 된 지금, 58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월남에서는 단발로 8발이 나가고, 탄창을 갈아끼우는 M1 소총을 개인화기로 무장하고 싸웠다. 한동안 막사도 없고, 밥도 지어먹지 못하고, 참호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조국의 발전과 명예를 위하여 참전했던 모든 용사들, 진실로 애국했던 용사들임을 잊지 말아 주길 바란다. 참으로 자랑스러웠던 대한의 용사였다.

그 어느 정치인이 이보다 더 조국을 사랑할 수 있을까.

서울 현충원, 대전 현충원, 영천 호국원에 참배할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제 몸이 불편하여 더 이상 참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인들은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을 의례적으로 찾는다. 말만 국가를 위하는 척 하지 말고 진실로 마음을 되새겨야 한다.

용문산 뻐꾸기 소리가 지금도 들려온다. 윤동주 시인의 시 한 구절도 생각난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신현준 울산 울주군 범서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