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26]]4부. 아름다운 호수 (4) - 글 : 김태환
간혹 가다가 애인을 불러들여 같이 지내는 것은 아니냐고 농을 걸었다. 김인후는 빙그레 웃으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소설을 쓰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니 그런 걸 다 겪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작가님은 결혼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해본 적이 없으십니까?”
나는 맹세컨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 세상에 삼강오륜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했다. 나는 그가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해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뿐이었다. 만약에 마음속에 다른 여인을 품은 적이 없었느냐고 물었다면 대답은 달라졌을 것이다. -간음하지 마라.- 마음속에 품는 것은 죄가 아니라면 나는 죄인이 아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은 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김인후에게 마음속에 품은 여인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여자는 그렇다 치고 술까지 안 드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김인후는 싱크대 안에서 담금주를 꺼내었다. 내용물을 보니 커다란 고구마 같은 것이 담겨져 있었다. 흔히 보아온 인삼주나 하수오주와는 거리가 먼 약재였다. 궁금해 하는 나에게 내용물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가까운 산에서 자기가 손수 캔 것인데 백봉령이라는 약재라고 했다.
“이건 산신령이 내어 주어야 캘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말로는 산삼은 산신령이 주지 않아도 싹을 보고 캐면 되지만, 백복령은 싹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 묻혀 있는지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소나무가 죽어 썩은 뿌리에서 자라는데 쇠꼬챙이로 땅속을 찔러보고 캔다고 했다. 오늘 밤에 담금주 한 병을 다 마시면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에 맺힌 정기를 다 먹게 되는 것이라 했다.
그가 따라주는 담금주를 단숨에 들이켰는데 독주였다. 기대했던 솔향기는 나지 않았다. 둘이서 한 병을 비워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김인후도 첫 잔은 시원하게 들이켰다. 빈 잔을 상 위에 내려놓으며 상체를 부르르 떨었다. 마침 고속열차가 진동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고속열차는 십오 분에 한 대씩 지나다녔다. 열차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자정이 넘으면 다니는 횟수가 많이 줄어든다고 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소음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김인후는 소음 때문에 팔리지도 않는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했다. 꼭 팔 목적이었다면 대곡댐에 수몰될 당시 마을 전체가 떠났어야 했다고 했다. 아래동네인 삼정마을까지 물이 차고 유촌 마을은 살아남았을 때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숨을 쉬었다고 했다.
수몰이 되고 나서 몇 해 후에 고향을 떠나간 수몰민들이 한 번씩 유촌 마을을 찾아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