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28]]4부. 아름다운 호수 (6) - 글 : 김태환

2024-06-25     이형중

내일 아침 9시면 오영수문학관으로 가야하는데 이제 겨우 7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한 숨 자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동안 고속열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멈추었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다. 숫자를 세기 시작하다가 울산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400km라는 생각을 했다. 울산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역까지 가는데 정확하게 두 시간 10분이 걸린다. 평균시속은 얼마인가? 나는 산술능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결에 잠이 든 것 같았다. ‘쇄액’하고 방 안을 흔드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떠보니 새벽이었다.

김인후는 벌써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에서 아침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깨어 난 기척을 알아차리고 주방문을 빼꼼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된장국 냄새가 먼저 달려왔다.

“잘 주무셨습니까? 열차소리 때문에 힘드셨지요?”

내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에 또 열차의 소음이 방안 공기를 흔들었다. 눈곱처럼 남아있던 잠의 찌꺼기들이 몽땅 달아났다.

“아. 진짜 보통문제가 아니군요.”

“이 이야기도 소설 속에 꼭 넣어주셔야 합니다. 고향을 떠나기는 싫고 소리는 시끄럽고. 아이고.”

“이름 없는 소설가 보다는 국토교통부장관을 모셔다가 하룻밤 재워 보내야겠습니다. 허.”

나는 김인후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대충 세면을 마친 다음 곧장 오영수 문학관으로 갔다. 이미 문학관 마당에는 행사에 참가할 문인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그 중에 처음 보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관장이 낯선 남자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수자원공사의 박동섭 차장님을 소개합니다.”

“박동섭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남자의 얼굴에 존경의 빛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만하게 보이지도 않는 수수한 표정이었다. 초면인데도 부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말투에서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세 대의 승용차에 네 명씩 타고 대곡댐으로 출발했다. 내 차에 관장과 박씨가 함께 탔다. 대곡댐 입구의 대곡박물관까지는 잘 아는 길이었다. 선두에서 문학관을 출발해 언양 시내를 빠져 나왔다. 경주로 가는 국도를 타고 곧장 반곡까지 갔다. 반곡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김용삼의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김용삼도 한 번 만나볼 생각이 있었다. 붉은 홍옥석 원석을 캐내던 광산을 찾으러 가볼 생각이었다.

반곡마을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반구대 암각화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500미터쯤 더 가면 대곡댐과 천전리 각석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20년 전부터 숱하게 드나들던 곳이라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이었다.

“선생님은 이곳 지리를 잘 알고 계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