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32]]4부. 아름다운 호수(10) - 글 : 김태환

2024-07-01     이형중

“그걸 모르고 계셨어요?”

K가 호주로 떠나간 지가 벌써 오년이 넘는다고 했다. 내가 시드니에 갔느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시드니와는 정 반대쪽인 호주 서쪽에 있은 퍼스라는 곳으로 갔다고 했다. 그가 가끔씩 국내의 잡지에 발표하는 시는 호주의 사막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시를 읽어보면 이미 이 땅을 떠난 사람 같다고 했다. 퍼스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중간쯤에 위치한 곳일 거라고 했다.

나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시드니에 한 달간 머문 것이 오 년 전이었다. 주로 시간을 보낸 곳은 시드니 공항 동쪽 리틀베이 바닷가였다. 사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절벽이 해안선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내가 머물던 스트라스필드에서 리틀베이로 가려면 안클리프를 지나 시드니 공항의 활주로를 관통하는 지하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오년 전이라면 내가 리틀베이로 가기 위해 공항 활주로 밑을 지날 때 K가 탄 비행기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설령 그랬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리틀베이의 너른 바위 위에는 여러 곳에 조그마한 동판이 붙어있다. 그곳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명판이다. 자세한 설명 없이 이름 앞에 로스트란 단어 하나만 적혀 있었다. 낚시를 왔다가 실족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자살한 사람들일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가 몸을 던진 리틀베이의 절벽 위에서 낚시를 했다. 어떤 날은 구루퍼라는 대형 어종이 낚시에 걸리기도 했다. 구루퍼가 아닌 블랙피쉬라는 물고기는 우리나라의 숭어만큼이나 흔했다. 낚시는 한 시간 정도만하고 그만 두었다. 남은 시간에는 맥없이 남극이 있음직한 방향을 바라보며 멍때리기를 했다. 리틀베이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모두 남극으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남극을 바라보는 해안에서 왜 사막을 꿈꾸었나 하는 점이었다. 가 보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호주 땅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여행사에 사막으로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비행기로 퍼스나 다윈으로 가서 그곳에서 사륜구동을 빌려 가는 게 좋다고 했다. 여행사 직원이 일행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묻길래 나 혼자라고 했더니 단번에 노를 연발하며 코믹한 웃음을 날렸다. 사막을 그렇게 장난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못 박았다.

유서를 써 놓고 리틀베이로 사라진 사람과 같은 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때 왜 사막으로 가고 싶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사막은 삶이 끝나는 곳이었다. 죽음으로 가는 관문으로 택한 것이 사막이었다. 사막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가고 싶었던 것은 혹시 K가 아니었을까?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사막으로 갔었다면 K를 만났을까? 호주의 사막은 그 후에 내 작품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