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34]]4부. 아름다운 호수 (12) - 글 : 김태환

2024-07-03     이형중

한번 그림문자 해독에 도전해 볼 생각에서였다.

나머지 일행들은 천전리 각석은 패스하고 맞은 편 바위 절벽으로 난 산길로 접어들어 반구대로 내려갔다. 나는 천전리 각석을 뒤로 하고 관장을 태우고 반구대 암각화 입구에 있는 집청정으로 바로 갔다. 걸어서 온 일행들은 벌써 집청정에 와 있었다. 집청정에서 맛깔나는 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모두 걸어서 반구대 암각화로 갔다. 나는 일부러 김은경 시인과 함께 걸었다. K에 대해 더 알고 있는 게 있는가 물었다. 혹시나 그의 아내에 대한 소식도 얻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녀가 가까운 곳이 아닌 큰 바다 건너편의 다른 대륙에 있다는 것이 아픔으로 다가왔다. 이 생에서 만나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만나면 되지 하던 생각이 너무 방만하고 나태했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 생에서도 아득한 저 쪽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저 세상에서 만난단 말인가.

“한 번씩 국내의 시 전문잡지에 시를 발표하고 있어요. 그때마다 근황을 조금씩 알려오더군요. 선생님과는 잘 아는 사이세요?”

“아니오.”

나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K와 연관된 내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보여서는 안 되었다. K가 발표한다는 시 잡지의 이름을 더 물어보는 걸로 대화는 끝이 났다.

암각화 속으로 라는 이름의 음식점 앞의 나무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면 우측으로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그 대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에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었다. 20년 전에 내가 발견한 것이다. 나는 자랑스럽게 발견사실을 떠벌렸다. 한참을 떠들다 보니 갑자기 내 혼자 외톨이가 되어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공룡 발자국을 발견한 사실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수 억 년 전에 내가 남긴 발자국이라면 몰라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이제는 일반인이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20년 전에 처음 왔을 때처럼 물이 말라 있는데 철책을 설치해 건너갈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망원경을 설치해 놓았는데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그냥 건너편 바위벽에 고래그림의 암각화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일행은 반구대 암각화를 끝으로 문학관으로 돌아와 해산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므로 반곡 김용삼의 집으로 향했다.

“어이쿠, 소설가 선생님 또 오셨군요.”

김용삼은 또 홍옥석을 비싸게 팔아먹을 손님이 온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서 20만 원이나 주고 구입해간 홍옥석이 두 동강으로 깨어졌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돌을 물리러 온 걸로 생각하고 태도가 돌변할 지도 몰랐다. 그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은 홍옥석에 관한 정보이지 돌 자체는 아니었다.

나는 언제 한 번 홍옥석 원석을 캐던 광산을 찾아가 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