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45]]6부. 암각화 (2) - 글 : 김태환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더니 학술대회 책자를 펼쳐 나에게 내밀었다.
“여기를 보세요. 모 대학 교수가 발표할 토론문인데 여기 이 부분을 보세요.”
나는 이 교수가 가리키는 부분을 읽어보았다. 지나친 범위를 확대해석하는 것을 사이비 고대 심리학자라고 비하하고 있었다. 암각화의 해석을 주먹구구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암각화 속의 추상문양도 정확한 언어학에 대입해 과학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이비라는 단어에 은근히 거부반응이 일었다. 사실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더라도 하나의 예시를 보여주어야 학자들이 진위의 타당성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과학적인 해석이라는 틀에 묶여 하늘의 별을 보듯이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해결 방법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추상문양은 모두 명사나 동사가 아닐까요? 형용사도 들어 있겠지만 조사나 부사가 쓰이지는 않았겠지요.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추듯 하면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 명사는 어떻게 읽을 수 있겠습니까? 대표적인 예로 여기 맨 위의 겹마름모꼴은 무슨 단어라고 생각하십니까? 겹마름모꼴 다섯 개가 붙어 있네요.”
나는 책자 속에서 이 교수가 제시하는 문양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각석의 맨 상단에 있는 문양이었다. 어제 암각화에 갔을 때도 실제로 들여다본 문양이었다. 나는 어제 생각했던 내용을 줄줄 이야기 했다. 겹으로 표시되었다는 것은 울타리를 뜻하는 것이고 겹의 숫자는 방어막을 뜻하는 것이니 부락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했다. 부락이 다섯 개가 붙어 있으니 다섯 개 부락의 연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나의 설명에 기가 차다는 듯 빤히 건너다보았다. 소설가라는 사람들이 엉뚱한 이야기를 잘도 지어내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곧이어 다음 토론자가 올라와 발표를 시작했다. 이 교수와의 대화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하일식 연세대 교수의 천전리 명문과 신라인의 삶이 발표되고 휴식시간도 없이 다음 발표로 이어졌다. 김재윤 부산대학교 교수는 유라시아 시베리아와 천전리암각화의 비교고찰이라는 발표에서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다수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암각화가 천전리 각석의 추상문양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발표했다.
김재윤 교수의 발표가 끝나고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이교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이면 청동으로 암각화를 새겼나요?”
“그게 사이비 고대 심리학자들이 쓸 만한 주장입니다.”
이 교수는 암각화에 대한 나의 상식이 매우 부족함을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청동기시대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시대 구분이라는 것이었다. 청동기는 최초로 만든 시점에서 거의 사용을 못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