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첨병, 울산문화예술人]“작가·시대 조명 아카이브전시 활발해지길”
울산 민중미술 1세대로 40여 년 동안 활동 중인 정봉진 작가는 작가와 시대를 조명하는 아카이브 전시가 활성화돼야 다음 세대가 이를 대물림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문화도시 울산이 되기 위해 좀 더 열린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울산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발언하는 등 다음 세대를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민중미술 1세대로 부침 겪어
지난 20일 북구 연암동 울산노동역사관1987 기획전시실에서 만난 정봉진(65) 작가는 6월27일부터 8월10일까지 울산 민중미술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리고 있는 ‘정봉진, 일·꿈·삶 그리기’ 전시의 목판화 찍기 체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정 작가가 작업한 목판화를 가지고 직접 판화 찍기를 체험할 수 있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물론 동료 작가들도 기대감이 가득했다.
정 작가의 여러 목판화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롤러로 목판화에 잉크를 묻히고 종이를 올려 문지르개인 ‘바렌’으로 종이에 잉크가 골고루 잘 묻도록 한 뒤 천천히 종이를 떼어내면 선명한 모습의 판화 작품이 탄생한다.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체력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정 작가는 완성한 판화 작품에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판화 찍기 체험이 마무리되고 정 작가와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정 작가는 울산 민중미술 1세대다. 정 작가는 민중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군사 독재 시대 건강한 문화예술을 해야한다는 필요성을 느껴 시작하게 됐다. 민주화 운동처럼 문화 운동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민중미술 1세대로 어려움도 많았다. 민주화 운동처럼 탄압도 많이 받았다. 감옥에 가서 고문을 당한 동료도 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좋은 세상을 바라고 민중미술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시대가 더 안좋아진거 같다며 “문화예술인들이 사회의 다각적인 문제를 조명하는 작업을 해야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들이 흐려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울산에서 민중미술을 하는 작가는 50여 명(울산민예총 민족미술인협회) 정도로 젊은 세대는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정 작가는 “왜 그림을 그리는지,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자기 대답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선배들이 후배를 이끌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민중미술은 아직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울산을 떠나지 않도록 꾸준히 받쳐주고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도시 울산 위한 제언
정 작가는 판화, 채색화, 조각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업했다. 현물로 남아있는 작품 수만 300여 점이 된다. 그중에서 정 작가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목판화다.
정 작가는 “주로 목판화 작업을 많이 했다. 여러 장을 찍어내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며 “붓과는 달리 칼로 나무를 깎아서 새기는 작업에서 힘찬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전태일 노동운동가의 50주년을 기념해 삼베에 그린 것과 불꽃을 안고 있는 나무 부조 조각을 꼽았다.
아카이브 전시의 활성화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 작가는 “그동안 울산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아카이브 전시가 잘 없었다. 아카이브 전시를 하지 않으면 작품이 사라질 우려가 높다. 다음 세대가 대물림해 발전시킬 수 있도록 아카이브 전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문화도시 울산이 되기 위해 좀 더 열린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정 작가는 “문화도시 울산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나눠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을 등한시하거나 편협하게 봐서는 안된다”며 “개인이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단체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정봉진 작가는 “최근 반구대 암각화에 얽혀있는 이야기, 생물 다양성, 환경에 관한 것, 박제상 이야기 등을 작업하고 있다. 작품 활동에는 끝이 없다. 끊임 없이 시대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며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발언하는 등 다음 세대를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권지혜기자 ji1498@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