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47]]6부. 암각화 (4) -글 : 김태환

2024-07-22     이형중

심지어는 나의 생일조차도 까먹기 일쑤였다.

“누구 생일인가?”

“아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러게 어디에든 적어놓으라니까요.”

“그걸 일일이 어디에다 적어?”

“당신이 좋아하는 저 돌덩이에다 적어놓으면 되겠네요. 매일 들여다보니 잊어버리지는 않겠어요.”

아내는 거실 한 쪽에 있는 수반석을 가리켰다. 길이가 75㎝나 되는 산수경석이 거실 한 쪽에 놓여 있었다. 한참 수입이 좋았던 시절에 삼천만 원이란 거금을 들여 구입한 남한강 오석질의 원산경이었다. 십 년이 넘도록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물을 뿌려 감상하는 명품석이었다.

아내가 하는 말은 돌을 좋아하듯이 기념일도 좀 챙기라는 소리였다. 나는 돌에 기념일을 새긴다는 문장을 떠올리는 순간 곧바로 천전리 각석을 떠올렸다. 고대인들도 무엇인가 기념할 만한 날이 있었을 것이고 바위 위에 그림으로 새겨 놓을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음. ‘바위에 새긴다’ 이 말이지.”

아내는 표정이 이미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나를 보고 낙담한 모양이었다.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앉고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곧장 서재로 들어가 학술대회에서 가져 온 책을 펼쳤다. 휴대폰을 열어 어제 천전리 각석에서 찍어온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부산대학교 김재윤 교수가 발표한 시베리아 암각화 문양을 펴 놓고 유사점을 찾아보았다. 혹시 날짜나 숫자를 의미하는 문양이 있을까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십진법이 통하지 않을 시대였으니 숫자의 의미를 찾아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았다.

한참을 암각화 문양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서재로 찾아왔다. 아내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우울해 보였다.

“당신이 정말 우리의 결혼기념일까지 까먹을 줄은 몰랐어요.”

“아! 결혼기념일!”

순간 망치로 이마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봄부터 결혼기념일에 반지와 목걸이를 해주기로 철썩같이 약속을 해놓고 잊어버리고 말았다. 반지와 목걸이를 생각한 순간에 책상 위에 놓인 홍옥석에 눈길이 갔다.

‘이걸 반지나 목걸이로 만들면 수십 개는 나올 겁니다.’

김용삼의 능글능글한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깨어진 나머지 부분의 홍옹석을 집어 들었다.

“이거 어때?”

아내는 드닷없이 들이미는 돌멩이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돌을 연마해 반지나 목걸이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못미더워 하는 표정이었다.

“돌로 무슨 반지 따위를 만들어요?”

나는 붉은 돌도끼를 들어 보여 주었다. 홍옥석으로 만든 돌도끼의 표면은 빨간 사과처럼 빛깔이 고왔다. 나는 보석도 모두 돌을 갈아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아내의 표정이 점점 호기심을 더해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