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50]]6부. 암각화(7) - 글 : 김태환

2024-07-25     이형중

저수지를 내려와 두서면사무소가 있는 인보에서 차를 꺾어 천전리 골짜기로 들어갔다.

한참을 달려가니 대곡댐 아래에 있는 박물관이 나왔다. 이틀 전에 왔던 곳이었다.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무조건 개울로 들어섰다. 대곡댐에서 발전을 위해 일정량의 물을 흘려보내고 있어 하천의 수량이 제법 많았다. 수석 탐석의 묘미는 전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산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곳에서 쓸 만한 수석감이 나오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물이 불어나 있어 돌밭으로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씩 모여 있는 돌밭에 들어가 홍옥석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불과 500m 남짓한 하천을 뒤지는데 한 시간을 넘게 허비했다. 내가 찾아낸 것은 빨래판처럼 넓적한 평석을 찾아낸 게 전부였다. 시골집의 댓돌로 사용하면 딱 좋을 그런 볼품없는 돌이었다. 석질도 천전리 각석을 이루고 있는 무른 변성암이었다.

천전리 각석으로 건너가는 다리에 오니 문화해설사 이인숙씨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었다.

“작가 선생님 오늘은 또 어쩐 일이세요?”

“아. 네. 이야기를 주우러왔습니다.”

“이런 개울에도 이야기가 있나요? 많이 줍기는 하셨어요?”

나를 놀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40㎝가 넘을 듯한 넓적한 돌을 내밀었다. 누가 보아도 예전에 우물가에 놓아둔 빨래판 같은 돌이었다. 이인숙씨는 돌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이건 원시인들이 사용하던 빨래판인가요?”

농담으로 하는 말이 분명했다. 나는 암각화에 대해 연구하려면 주변 환경부터 돌아보아야 한다고 둘러댔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엉뚱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사이비 고대심리학자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당시의 상황을 추리해볼 필요는 있었다. 왜 여기 바위에다 그림을 그렸는지, 바위가 아닌 나무나 동물가죽 같은 곳에도 그림을 그렸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 재질이라면 아직까지 남아 있을 수 없겠지만 작은 돌판에 새긴 그림이 있었다면 발견된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았다.

이인숙씨는 얼마 전에 있었던 헤프닝을 들려주었다. 가까운 마을에서 공사 중에 다량의 공룡알이 출토되었다고 연락이 와서 달려가 보았다고 했다. 땅속에 묻힌 둥근돌이 다수 나와 있었는데 화강암 재질이더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수준의 상식만 있어도 알아보았을 텐데 난리를 쳤었다고 했다.

나는 이인숙씨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상식을 그때 당시에는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암각화를 새기던 시대 사람들도 건너편 바위바닥에 자국으로 남겨진 공룡발자국을 보았을 텐데 그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분명 커다란 동물의 발자국인지는 알았을 텐데 한 번도 보지 못한 커다란 동물이 어디엔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