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51]]6부. 암각화(8) - 글 : 김태환

2024-07-26     이형중

더구나 바다에 사는 커다란 고래를 보면 육지에도 고래처럼 커다란 동물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진실을 정확하게 모르면 두려움을 느낄 수 있고 종교적인 믿음이 생겨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세 사람은 천전리 각석 앞으로 갔다. 나는 일부러 김용삼에게 각석에 대한 추억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김용삼은 내가 물어보아 주기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신이 나서 떠들었다. 자기는 이곳에 오면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학교에서 이곳으로 소풍을 오기도 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여름이면 이곳에 와서 더위를 피했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 개울에 빠꼬마시라는 작은 물고기가 아주 많았어요. 멸치보다 작은 물고기인데 개울 바닥이 새까말 정도로 많았죠. 크기가 너무 작아 모기장을 이용해 잡았어요. 그걸 어떻게 먹었는지 아세요?”

“매운탕을 끓여 먹었겠지요.”

“아니요. 생으로 먹었어요. 살아서 꿈틀 거리는 놈을 숟가락으로 떠서 초고추장에 비벼 먹었죠. 아주 별미였어요.”

나는 생으로 민물고기를 먹었다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디스토마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인숙씨는 이곳에 오는 사람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몇 명 만나본 적이 있다고 했다. 김용삼이 지어 낸 이야기는 아닌 것이 확실했다. 예전 고대인들은 고래를 잡아먹었을 터인데 현대의 사람들은 모기장으로나 잡을 수 있는 작은 고기를 잡아먹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셋은 나란히 서서 각석 벽면에 새겨진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김용삼이 나에게 물었다.

“작가님은 이 그림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세요?”

김용삼이 그런 질문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터라 대충 에둘러 대답했다.

“글쎄요. 무슨 물건을 빌려주고 적어놓은 치부책 같은 것이 아닐까요?”

김용삼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다. 작가가 너무 상상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나는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김용삼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얼떨결에 성경책이라고 대답해버렸다. 그러자 김용삼은 아이고 소리를 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심하다는 뜻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책은 나라의 틀을 정해놓은 헌법 책이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민은 모두 평등하고 영토는 어디어디로 한다고 적어놓은 헌법 책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네요. 그럼 이 그림들도 그때 당시의 헌법과 같은 기능을 하도록 새겨 놓았다는 말이군요?”

김용삼은 자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제일 중요한 것을 적어놓았지, 할 일이 없어 놀이삼아 새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개인의 사소한 이야기가 아니라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데 필요한 내용을 적어놓았을 것이라는 의견에 공감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