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52]]6부. 암각화(9) - 글 : 김태환
“그럼 일부분이라도 내용을 알아볼만한 그림이 있을까요?” “나름대로 알고 있는 그림은 있지요. 여기 이 그림요.”
김용삼은 바위면 제일 꼭대기에 있는 그림을 가리켰다. 겹마름모꼴이 다섯 개 연속으로 그려진 문양이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어렸을 때 땅 위에 그림을 그리고 놀던 생각을 해보세요. 여기는 내 땅이야. 하면서 주변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지 않았나요. 우리들이 흙바닥에다 그릴 때는 큼지막하게 그렸지만 바위에 기록하기 위해 새긴다면 그렇게 크게 그리지는 않겠죠. 크기는 작지만 겹으로 그린 마름모꼴은 하나의 마을을 나타내는 것이었을 겁니다. 다섯 개를 그린 것은 다섯 개 마을이 모여 여기 규칙을 새긴다는 제목과 같은 것이었겠죠.” 나는 김용삼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 똑같이 말을 하고 있는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과학적으로 정확한 해석을 하려 하기보다는 아이들이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듯이 쉽게 생각하고 접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김용삼에게 다음 그림을 해석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김용삼은 예상과는 달리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무슨 박사라는 사람들이 해석을 해야지요. 작가님도 한 번 해보시던가요.”
김용삼의 말투에는 무엇인가 못마땅한 게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꼬치꼬치 물어대자 김용삼이 목소리를 조금 높여 대답했다. 그의 주장은 암각화를 자기가 발견했다고 떠드는 사람도 한심하고 50년 동안이나 무슨 뜻인지도 밝혀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동네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자기가 발견했다고 하는 것부터가 유치하고, 배우지도 못한 자기도 알고 있는 내용을 박사라는 사람들이 모른다는 게 한심하다고 했다.
“내용을 아시면 왜 박사님들에게 알려주지 그랬어요?” “내가 왜 그래야 하죠? 나한테 듣고도 또 자기가 다 알아냈다고 할 게 뻔한데.” 김용삼은 이미 자기가 암각화의 문양 내용을 다 꿰뚫어보고 있다는 투였다. 그 내용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들에게 들은 이야기이고 같은 마을에 사는 자기 또래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인숙씨가 김용삼의 모습을 멍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을 보는 듯 했다. 같잖다는 투로 그런 내용을 알면 제보를 하지 왜 가만히 있느냐고 했다. 김용삼은 자기 마을의 내력인데 그 사람들에게 제보를 해서 얻을 게 무엇이 있느냐고 했다.
“이건 우리 마을의 역사책과도 같은 것인데 아줌마 같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벌어먹고 사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김용삼은 이인숙씨에게 대놓고 아줌마라고 불렀다. 이인숙씨는 불쾌한 기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이 동네 물건인 줄 알아요?” “알았수다. 내 다시는 여기 안 올 테니 걱정하지 마슈.”
김용삼은 나에게 가자는 말도 없이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하는 수 없이 나도 김용삼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에 와서 아까 놓아두었던 넓적한 돌을 어깨에 메었다. 이인숙씨는 문화해설사들이 근무하는 건물로 들어가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