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55]]7부. 유리(3) - 글 : 김태환
“이제는 마츠오도 우리를 용서할까요?”
“….”
나는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용서라면 에리코와 어린 유리를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왔을 때 모든 것이 덮어졌어야 하는 것이었다. 조선인 김재성을 버리고 일본인 다케시로 살기로 작정했으면 모든 건 용서되어야 했다.
“당신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나요?”
“여전히.”
“하나님도 우리 사랑을 용서하실까요?”
나는 에리코의 입에서 하나님이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조선에 있을 때는 주말마다 성당에 다니던 에리코였지만 일본으로 건너오고 나서 성당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가슴 속에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나요?”
“물론이죠. 내 죄를 용서받지 못할 것 같아서 성당에 갈 수가 없었던 것이죠.”
“세상에 용서받아야 할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죄 없으니 사랑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삶의 무게가 검불처럼 가벼워 보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마츠오를 잊고 사랑을 할 수 있었겠어요.”
“나는 마츠오가 지금까지 살아있었어도 당신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에리코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말은 진심이었다. 혹시라도 조선이 해방될 때까지 마츠오가 살아 있었다 해도 내 사랑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살고 있어 만날 수 없었다 해도 나는 사랑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생의 사랑은 나에게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 삶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충만한 것이었다.
에리코가 이마를 내 어깨에 지긋이 기대왔다. 나는 그 가벼운 무게에도 온 세상이 나에게로 다가와 안기는 듯했다. 우리의 삶은 나이가 들어서야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유리가 낳은 아이들이 재롱을 부릴 때면 우리가 낳은 아이들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리도 우리들의 사이가 좋아진 걸 보고 행복해 했다.
그러나 유리는 물론이고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의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부부의 은밀한 잠자리에 대한 것이었다. 내 나이는 아직까지 남자로서의 남성성이 왕성하게 살아 있는 시기였다. 반면에 에리코는 갱년기를 지나 폐경을 하면서 성적인 자극에 무덤덤해 진 것 같았다. 둘이 처음으로 한 침대에 누웠을 때 나는 신혼 첫날밤을 치루는 새신랑 같았다. 처음으로 입을 맞추었을 때 에리코는 조금 당황하는 듯 했다. 그 다음에 양팔로 가슴을 끌어안고 젖가슴에 은근한 압박을 가했을 때 에리코가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다음 동작에 에리코의 잠옷을 걷어내고 속옷을 벗기려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두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만든 에레코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