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57]]7부. 유리(5) - 글 : 김태환
나는 유리의 이야기를 듣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곳이 바로 너의 친아버지 마츠오가 살해당한 곳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유리는 그곳이 왠지 예전에 한 번 와 보았던 기시감이 들더라고 했다.
“내가 어려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혹시 나를 데리고 그곳에 갔었나요?”
에리코는 유리의 질문을 받고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대답은 하지 못하고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죠. 왜 그곳에 가 보았던 기분이 들었을까요? 그리고 왠지 눈물이 나더군요.”
나는 더 이상 유리가 암각화 이야기를 하지 말았으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에리코의 얼굴은 파랗다 못해 밀랍처럼 하얗게 굳어 있었다. 잠시 에리코의 몸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잽싸게 넘어지는 에리코의 몸을 받아 앉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머리를 바닥에 부딪칠 뻔 했다.
“엄마!”
유리가 놀라 내 품에 쓰러져 있는 에리코에게 달려들었다. 에리코는 이미 눈자위가 뒤집혀 있었다. 유리가 아무리 흔들어도 금방 깨어날 것 같지 않았다. 급하게 쓰러진 에리코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이 그리 멀지 않아 신속하게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환자상태를 살펴본 의사는 단번에 급성뇌출혈 진단을 내렸다. 제일 빠르고 확실한 치료법은 두개골을 열고 출혈된 피를 빼내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 방법이 후유증이 제일 남지 않는다고 했다. 수술을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의사가 내 의사를 먼저 물어보았다.
“다른 치료방법은 없습니까?”
“두개골 안에 흘러나와 있는 피가 혈관을 통해 흘러나오도록 유도하는 약물치료방법이 있지만 후유증이 많이 남을 수 있습니다.”
나는 유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암각화 이야기를 했을까 하고 원망을 해보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이날까지 일본에 건너와 살면서도 언양에서 있었던 일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고 살았다. 그것은 에리코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암각화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암각화 앞에서 머리가 쪼개져 허옇게 뇌수가 드러난 마츠오의 모습을 기억에서 지우려고 지금까지 몸부림을 치고 있는 터였다. 에리코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유리는 그런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연한 관광길에 암각화에 들리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미리 그런 여행계획을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렸을 것이다. 나는 수술동의서에 도장을 찍는 걸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가 쪼개진 마츠오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보였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그런 나의 태도를 못마땅한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보다 못해 유리가 나섰다.
“아빠 괜찮을 거니까 얼른 도장을 찍으세요.”
“정말 괜찮을까?”
“제가 책임질 테니 찍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