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60]]8부. 사막(1) - 글 : 김태환
김재성씨의 일기를 읽다보니 하룻밤을 홀딱 새고 말았다. 용변을 보러 화장실에 가기 위해 거실로 나갔더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아내는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는지 집안이 조용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안방 문을 소리가 나지 않게 살짝 열어보았다.
아내는 아직도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방안 온도를 높여 놓아서인지 이불을 사타구니 사이에 끼고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잠든 아내의 모습을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35년 전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았다. 함께 살다보니 아내가 늙어가는 걸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시장기를 느꼈지만 그대로 아내의 곁으로 파고들었다. 그 바람에 아내는 잠에서 깨어났다. 왜 이제 들어오느냐고 한 마디 하고는 다시 잠들었다. 나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대로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심하게 허기가 느껴져 잠에서 깨어났다. 아내는 일어나 어디로 가고 빈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오후 한 시였다. 거실로 나왔는데 아내의 기척은 없었다. 소파 탁자 위에 쪽지가 놓여 있었다.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 나가니 알아서 밥을 챙겨먹으라는 내용이었다. 친절하게도 국은 끓여 놓았으니 데워서 먹으라고 적혀있었다.
아내가 원망스런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쪽지를 적어놓은 것만도 고맙게 생각되었다. 여자라고 해서 끝까지 남자의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주방으로 들어가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밥은 보온이 되어 있는 밥솥에서 퍼 담기만 하면 되었고 끓여 놓은 국을 데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냉장고 안에서 대충 몇 가지 밑반찬을 꺼내 놓고 수저를 들었다.
밥을 먹다가 문득 어제 밤에 읽었던 김재성 노인의 일기가 생각났다. 평생을 같이 살던 배우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혼자 밥을 차려 먹어도 아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클 것 같았다. 만약 나의 아내가 갑자기 떠나기라도 한다면 삶의 여유가 모두 사라질 것 같았다. 새삼 아내의 존재가 고마웠다.
밥을 다 먹고 대충 치우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며칠 전에 대곡댐 문학기행 때 만난 경주의 김은경 시인이었다.
“선생님께서 그날 K시인에 대해 물으시길래 전해 드릴 소식이 있어서요.”
“무슨 소식입니까?”
“K시인이 죽었답니다.”
“네에? 죽다니요? 아직 나이가 있는데.”
“사막에서 죽었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전화상으로 알려드리기가 뭐 하니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당장 만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