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수막 전용게시대 ‘패싱’ 현실화
2024-08-09 신동섭 기자
8일 울산 남구 무거동 교차로 신호등 위, 가드레일에는 A정당의 정치 현수막이 걸려있다.
현수막에는 A정당 울산시당위원장 명의로 “시민곁에 A당 울산시민과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A당의 정치 현수막은 대법원의 전용 게시대 이용 조례안 무효 판례로, 법적 테두리 안에서 게재됐다. 하지만 B정당의 경우 협의회 등의 단체에서 정치 현수막의 모습을 본따 특정 의원을 격려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하는 등 도시 미관을 저해하기도 했다. 이를 본 시민들은 불쾌함을 드러냈다.
임모(30대·남구)씨는 “전용 게시대 설치를 통해 도시 미관도 좋아졌는데, 왜 또다시 현수막이 걸린지 모르겠다”며 “이제 하나둘 걸리기 시작하면 무분별하게 걸리는 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본다”고 말했다.
울산시의회는 지난해 9월 ‘울산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 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를 제정·공포했다. 조례에는 ‘정치 현수막을 전용 게시대에 설치하고, 이를 위반하면 철거할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었고, 이를 통해 정치 현수막 정비의 물꼬를 마련했다.
계도기간을 거쳐 개정 조례가 본격 시행된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로는 울산 지역 곳곳에 정당 전용 게시대가 설치됐고, 정당의 적극적인 참여로 거리마다 난립했던 정당 현수막이 사라졌다.
하지만 조례 개정 과정에서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과 상충한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행안부는 조례를 개정한 울산·광주·서울·부산·대구시의회 등을 상대로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해 지난달 25일 승소했다.
시는 지난해 조례 제정 이후 약 7억2500만원을 들여 지역 120곳에 전용 게시대를 설치했고 올해 47곳을 추가해 총 167곳을 마련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무효 판결로 사업이 전면 백지화뿐만 아니라 예산 낭비의 또 다른 사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정치 현수막이 난립할 시 도시미관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을 저해할 수 있기에, 지역 정치권 차원에서 이미 설치된 전용 게시대를 우선 사용하도록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시 관계자는 “정당 간의 협의를 주선하고 있다. 하지만 휴가 기간이 겹치다 보니 협의 과정 중 일부가 현수막을 게재한 것 같다”며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 도시 미관을 위해 만들어진 전용 게시대인 만큼 최대한 활용도를 높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동섭기자 shingi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