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 묻은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뜨거운 항일노래
2024-08-16 이형중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강의실.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자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가사를 읊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 몇 명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압록강 행진곡’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곡이 끝난 뒤, 연주자가 ‘새로운’ 바이올린을 꺼내 들자 사람들의 시선도 쏠렸다. 여기저기 찍힌 흔적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이 악기는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이며 문화운동가인 한형석(1910~1996) 선생의 손때가 묻은 바이올린이었다.
광복절을 엿새 앞두고 열린 ‘독립을 그리던 그들의 이야기’ 학술대회에서 한형석의 손녀 한운지(23)씨는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대한국행진곡’을 연주하며 독립운동의 뜻을 기렸다. 한씨는 부산시립교향악단 비상임 단원으로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다.
2001년생인 한씨는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부산 출신인 한형석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청년전지공작대 결성에 참여했으며 광복군에 합류한 뒤 ‘광복군가’ ‘압록강 행진곡’ 등 다양한 항일 노래를 작곡했다. 1953년 부산에 ‘자유아동극장’을 설립해 명작 동화를 각색한 아동극을 무료로 보여주는 등 전쟁의 상처 속에서 아이들을 살뜰히 챙겼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다.
한씨는 “연주를 준비하면서 할아버지가 작곡하신 곡을 듀엣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며 웃었다.
추억이 담긴 악기로 연주하는 ‘대한국행진곡’은 의미가 크다. 이 곡은 1940년 중국에서 처음 공연한 창작 오페라 ‘아리랑’에 수록된 것으로, 2020년 한형석 선생의 작품을 재조명하면서 알려졌다.
한씨는 많은 사람이 ‘한형석’ 세 글자를 기억해주길 바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