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66]]8부. 사막(11) - 글 : 김태환
언제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면 되었다. 혹시나 가다가 길이 엇갈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사막 한가운데서 그를 만날 확률은 아주 희박했다.
내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되도록 뜨거운 태양을 피해 밤중에 걸을 예정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옥죄게 하는 사막을 바라보며 걷는 것 보다 밤 하늘의 별을 보며 걷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별을 보며 걷는 길’ 글로 써 놓으면 저절로 시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막을 걷는 길이 낭만적인 것도 같았다.
그렇게 별을 보며 걷다가 졸린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으면 그대로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누울 것이다. 그러면 눈을 감고 있어도 오히려 밤하늘의 별들이 나를 내려다 볼 것이다. 그대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아침이면 해가 떠서 나를 흔들어도 결코 한 번 감은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메마른 바람이 내 얼굴을 쓰다듬어도 모른 체 할 것이다. 그래도 밤이 되면 별들이 나를 내려다 볼 것이다. 그대로 잠들어 무엇이 되어도 괜찮겠다. 사막에서 누우면 그대로 사막이 될 것이다. 이미 그도 사막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계획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한국영사관의 직원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실종자를 찾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종용했다. 나는 혼자서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확고하게 대답했다. 조만간 사막으로 그를 찾아가겠다고 했더니 화들짝 놀랐다.
“사모님도 실종되면 우리는 심한 문책을 당할 것입니다. 눈을 뻔히 뜨고도 자국민을 지키지 못했다고 할 테니까요. 절대로 사막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저희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것입니다.”
직원은 정말로 매일 전화연락을 해왔다. 전화를 받지 않았더니 직접 달려왔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무조건 사막으로 떠난 걸로 간주하고 달려오겠다고 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다음부터는 또 집으로 달려올까 즉각 전화를 받았다.
나는 차츰 사막으로 가려던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영사관 직원의 감시 때문은 아니었다. 휴대폰을 충전시키고 예비배터리까지 휴대하고 떠나면 이삼 일은 직원의 전화를 받을 수도 있었다. 나는 사막으로 떠나는 대신 매일 밤 사막에서 밤을 새웠다. 집에서 한 발짝만 나서면 사막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낮에는 집 안에서 잠을 자고 저녁별이 돋기 시작하면 집 밖으로 나가 별 바라기를 했다. 그러다가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지 집을 떠나 사막 한가운데로 달아날 생각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할퀴었다. 나는 하던 일을 제쳐놓고 시드니행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극성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하늘길이 막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목책 건너 암각화를 바라보았다. 암각화 속에 그녀가 있는 것이라면 차가운 겨울물속을 걸어서라도 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