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67]]8부. 사막(12) - 글 : 김태환
그녀의 글로 보아 K는 이미 사막이 되어있는 게 분명했다. 20년 전에 나의 사막을 가져가더니 그대로 사막이 되었다. ‘사막을 사랑하고 사막에서 사라진 시인’ 그는 그렇게 자기의 시를 완성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녀가 아무리 애타게 기다려도 K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시만을 위해 떠난 게 분명했다.
그녀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면 K의 시를 좋아했던 애독자들이 열광할 것 같았다. 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진정한 시인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았다. 그러나 사막의 언저리에 남겨진 그녀는 어쩌란 말인가. 낯빛이 핼쓱하고 볼우물이 깊은 나의 그녀는 도대체 어쩌란 것인가?
나는 조바심이 나서 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항공사로 전화해서 시드니행 항공편을 물어보았다. 그녀가 사막이 되어 K의 곁에 누워있도록 버려둘 수 없었다. 항공사 직원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어려운 사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당분간은 시드니로 날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약에 그녀에게로 날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녀는 나의 존재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20년 전에 딱 두 번 마주친 남자를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까지 그녀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책에 나온 그녀의 이름이 김동휘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름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김동휘면 어떻고 박동휘면 또 어떤가. 볼우물이 깊은 그녀면 되었다.
항공편이 열리는 대로 그녀에게 날아가리라 다짐을 했다. 시드니로 가서 호주사막의 동쪽에서 출발하여 그녀가 기다리는 서쪽 퍼스로 달려갈 것이다. 빗물을 모으는 비닐이나 모래를 파내는 삽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아무리 험하고 뜨거운 사막일지라도 단숨에 달려갈 것이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나온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20년 동안이나 내 안에 들끓던 쇳물이 이제야 찾아갈 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짧은 겨울 해가 암각화를 안고 있는 산 너머로 넘어가고 사위가 어두워졌다. 나는 유촌 마을로 차를 몰았다. 김인후는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나의 방문에 놀라면서도 반가워했다.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혼자서 저녁 먹을 생각을 하니 허전하던 참이었습니다.”
“어쩐지 이곳에서 밥 냄새가 나더라고요.”
김인후는 잽싸게 밥상을 차려내었다. 혼자 먹는 남자의 저녁상 치고는 푸짐했다. 냉장고에서 꺼낸 밑반찬만 해도 다섯 가지가 넘었다. 내가 좋아하는 어리굴젓도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거기다 차돌배기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는 어지간한 식당보다 맛이 나았다.
“아! 이런 맛은 혼자 즐기기엔 아까운데요. 식당을 하시면 대박이 날 것 같습니다.”
“작가님도 참. 시장이 반찬이라는데 많이 출출하셨군요.”
김인후는 맛있게 된장찌개를 떠먹고 있는 나를 넌지시 건너다보았다. 남자들 둘이 마주하는 식사지만 분위기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