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68]]8부. 사막(13) - 글 : 김태환

2024-08-21     경상일보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김재성씨의 일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어떻습니까? 우리 작은 할아버지일기는 진도가 좀 나갔습니까?”

나는 어제 밤을 새워 읽은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아무리 보아도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다는 것과 일부분이 빠져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이제 읽지 않은 부분이 얼마 되지 않는데 알아야 할 부분은 너무 많은 것 같았다. 특히 일본인 순사 마츠오라는 사람이 살해당한 부분이 누락되어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보훈처에 제출했다 돌려받을 때 누락이 된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내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한 부 복사를 해서 보훈처에 보낼 걸 그랬습니다.”

“마저 읽어보고 확실하게 빠진 것 같으면 보훈처에 찾아가 보도록 하지요.”

“그럴 것도 없이 내일 보훈처에 찾아가 빠진 서류를 돌려달라고 떼를 써보아야겠어요. 시침을 뚝 떼고 어깃장을 놓으면 오히려 쉽게 찾아올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요.”

그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며 마주보고 웃었다. 나는 김인후의 집안에서 김재성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물었다. 김인후는 작은 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갔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별로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25년 전에 귀국하고 나서야 어머니에게 자세한 내막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을 버리고 일본으로 건너가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일본여자 때문인 것 같은데요.”

김인후는 대답대신 고개를 갸웃했다. 쉽게 판단을 하지 못하겠다는 몸짓이었다. 그러더니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작은 할아버지가 귀국한 것이 1995년도니까 제가 서른일곱이었습니다. 결혼 십 년이 넘었으니까 슬슬 권태기가 올만도 한 나이였죠. 일본여자를 따라갔다는 말을 듣고 내 결혼생활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반발심 같은 게 생기더군요.”

김인후의 표정에는 단호함이 드러나 보였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결혼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외도를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어졌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세태에 반감을 품고 있는 듯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지요.”

나는 그의 확고한 신념에 말문을 열지 못했다. 오늘 하루 뜨거운 사막을 뒹굴다 온 사람처럼 정신상태가 혼곤해진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내 이외의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 더구나 상대가 있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죄악이 분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품은 것으로 간음이라 하는데 나는 이미 용서받지 못할 간음을 행한 죄인인 것이다.

그러나 죄악인 줄 알면서도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것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