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70]]9부. 귀향(1) - 글 : 김태환

2024-08-23     경상일보

나는 김재성 노인이 죽기 전에 한 번 보았으면 했다. 어쩌면 그 모습이 나와 아주 닮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정상적인 부부 사이도 아니면서 어떻게 50년 동안이나 여자 하나를 위해 헌신하고 살았는지 실제 모습이 궁금했다. 어쩌면 그 모습이 훗날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김인후와 잠자리에 들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낮 동안 들끓었던 사막은 조용히 가라앉았다.

나의 귀국을 제일 아쉬워한 것은 유리였다. 나는 이미 대곡건업의 경영에서는 손을 완전히 뗀 상태였다. 유리의 남편 요시노리는 경영에는 완전 귀재였다. 대곡건업의 주식은 탄탄한 반석 위에 올라 있었다. 나는 내 소유의 지분을 모두 유리에게 양도했다. 한국에 가서 노후를 보낼만한 돈을 준비했다. 나중에 부족할 것 같으면 유리에게 부탁을 해도 그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것이므로 아무 걱정이 없었다.

나는 미리 사람을 보내 고향에 남아있는 친척들을 조회해 보았다. 다행히 내가 살았던 전읍에서 조금 떨어진 유촌 마을에 형님의 손자가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설령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나는 가벼운 여행을 떠나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후쿠오카를 떠났다. 여행가방 안에는 간단한 속옷과 여벌의 옷 한 벌을 챙겨 넣었다. 그리고 50년 동안 손으로 쓰다듬었던 아까다마석을 커다란 타올에 싸서 가방 한가운데 넣었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고향땅이 비행기로 가니 순식간이었다. 김해공항에 도착하고 나니 한국 땅에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곧장 언양으로 갔다. 언양에 숙소를 정하고 차츰 사정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도착 다음날 택시를 불러 운전기사에게 아무 곳이나 하루 일정으로 주변 구경을 시켜달라고 했다. 50년 동안이나 사용하지 않았던 한국말을 하느라 다소 진땀이 났다. 혀가 굳어버린 것인지 단어를 잊어버린 것인지 말을 더듬었다. 택시기사는 기분이 좋은지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공교롭게도 택시기사가 나를 처음 데려간 곳은 반구대 암각화였다.

“이곳이 유명한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국보로 지정된 한국의 자랑스런 문화재입니다. 한국에는 이렇게 수천 년 전에도 바위에 기록을 남기던 우수한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이죠. 그때 일본에는 아마 원숭이들이….”

운전기사는 순식간에 하던 말을 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를 일본인으로 알고 있는 운전기사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여간 이 땅에는 수천 년 전에도 고래를 잡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죠. 고래사냥 그림이 남아있는 건 세계적으로 여기가 유일하답니다.”

나는 운전기사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예전에 개울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이 차가 다니는 포장도로로 변해 낯설게 느껴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