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71]]9부. 귀향(2) - 글 : 김태환
반구대는 운전기사가 데리고 오지 않았어도 내가 가자고 청을 넣었을 곳이었다. 알아서 이곳으로 데리고 온 운전기사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도로 말고도 또 있었다. 바로 댐이었다. 반구대 암각화 밑으로 흐르던 개울이 깊은 호수가 되어있었다. 물이 깊어 건너갈 수 없었다. 예전에 맨발로 건너던 때와는 많이 달랐다. 상대적으로 바위벽면이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는 한참 동안 물 건너편의 암각화가 있는 바위벽을 바라보았다. 운전기사는 무엇이 자랑스러운지 계속 흥이 나서 지껄였다.
“이곳 말고 암각화가 또 있지 않나요?”
“물론 있지요. 요 위에 천전리 각석이 있습니다. 걸어서 갈수 있는데 차로 가면 금방 갑니다. 안 그래도 그리로 모실 참입니다.”
택시는 좁은 고갯길을 넘어 경주간 도로로 나왔다가 다시 우회전하여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천전리 각석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곳이야말로 내 인생의 일대변화를 가져온 의미 있는 장소였다. 차가 넓은 들판에서 차츰 좁은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천전리 각석의 색다른 특징이었다. 대부분은 하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갈수록 계곡이 좁아지기 마련인데 이곳은 반대였다. 물길을 따라 내려갈수록 계곡이 좁아지는 특이한 지형이었다.
마지막 길이 끊긴 곳에 택시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니 예전에 눈에 익었던 지형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택시기사가 안내를 하지 않아도 혼자서 암각화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택시기사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돌다리를 건너 조금 더 걸어가니 아래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나타났다. 예전에는 바로 개울 옆으로 걸어왔던 것 같은데 위로 올라갔다 다시 돌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했다. 각석에 다가갈수록 가슴이 마구 뛰었다. 비스듬히 앞으로 누운 바위모양이 눈 앞에 나타나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갑자기 이마를 도끼에 찍혀 붉은 피를 줄줄 흘리던 마츠오의 환영이 나타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택시기사가 놀라서 내 팔을 부축했다. 몸의 중심이 흔들려 택시기사에게 몸을 기댔다.
“괜찮으십니까? 힘드시면 잠시 앉아서 쉬시지요.”
택시기사는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허둥댔다. 내 양쪽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천천히 바닥에 앉혔다. 나는 택시기사가 시키는 대로 몸을 맡겨 두었다. 너럭바위 위에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그 자리가 바로 50년 전에 마츠오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던 곳이었다. 울컥 구역질이 올라왔다.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실눈을 뜨고 바위 면에 새겨진 그림들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50년 동안이나 기억하고 있는 문양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문양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다른 데로 가봅시다.”
바닥에서 일어서지도 못한 채 택시기사를 재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