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4년의 방명록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죽은 아내인 에우리디케를 살리기 위해 저승을 찾아간 비운의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들어봤는가? 저승의 신,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이승으로 돌려보내기로 약속하고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바로,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 것. 신화나 속담에 나오듯, 우리는 어릴 때부터 뒤를 보지 말고 앞을 보며 나아가라는 것을 교훈으로 삼는다. 이 때 뒤를 보는 행위는 후회를 뜻한다.
하지만 후회가 아닌 회상으로서 뒤를 돌아보는 행위는 의외로 도움이 된다. 비싼 물건을 사고 싶을 때, 모아둔 적금을 보며 사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는 것. 관계를 끊고 싶을 때, 그 사람과 나눈 추억을 돌아보는 것. 책을 도중에 그만 읽고 싶을 때, 지금까지 읽었던 장을 넘겨보는 것. 도중에 포기하고 싶을 때, 지금까지 이뤄낸 작은 성공을 쓰다듬는 것. 결심이 흔들리거나 유혹이 앞에 있을 때 지금껏 잘해왔던 자신을 보며 스스로 다독이는 것이다. 이렇게 앞으로 도약하기 전에, 우리는 잠시 뒤를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
교사에게 이 시기는 4년 차에 정식으로 주어진다. 4년 차가 된 교사는 자격 연수를 듣게 되고, 연수가 끝나면 2정 교사에서 1정 교사가 된다. 1정 교사는 업무부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 때 동료 교사로부터 격려와 축하를 많이 받는데, ‘1정 교사는 2정 교사와 겸상하지 않는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기 때문이다.
교단에서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전국적으로 유명한 교사와 강사에게 3주 동안 수업을 듣는다. 지도에서 빨간 글씨로 ‘현 위치’라고 적힌 문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3주 내내 교직이라는 광활한 공간에서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찍혀 있는지 분주히 좇았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강사님들과 자기 분야로 향하는 동기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조바심이 났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던 고등학교 시절처럼, 발은 움직이되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의문에 휩싸였다.
그 때 잠시 멈춰 뒤를 돌아봤다. 4년의 길목에는 흐릿하나마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3분의 1 정도 되는 작은 폭의 발자국들이 함께 있었다. 지금까지 내세울 만큼 사랑이 많다거나 헌신하는 교사는 아니었다. 때론 아이들에게 감정이 상하고, 섭섭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온 벌레 한 마리로 한참을 떠들고, 자그마한 변화에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어봐 주는 아이들과의 평범한 추억이 남아있었다. 수업시간에 배움을 주고받고 진심이 통하던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있었다.
다시 앞을 바라본다. 남들처럼 화려하고 빛나는 길이 아닐지라도, 교실을 거쳐 간 학생들이 흔적을 남기는 방명록이 된다면 나의 길은 가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교사에게 중요한 건 학생이고, 수업임을 다짐한다. 4년 차인 지금, 교단으로부터 네 발자국을 앞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로 네 발자국 다가갔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배상아 연암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