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73]]9부. 귀향(4) - 글 : 김태환
죄의식을 느끼기에는 이미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바로 되돌아 나가자고 했다. 택시기사는 내 표정을 흘끔흘끔 훔쳐보더니 어디로 가고 싶은 지 물었다. 나는 예전에 일제강점기에 붉은 홍옥석을 캐내던 곳을 알고 있는가 물었다. 택시기사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미호라는 마을이 있소. 그 마을 끝에 백운산으로 올라가는 골짜기가 있었소.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 지금 저수지를 만들고 있는 곳이군요. 그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택시는 천전리 골짜기를 빠져나와 언양 경주간 국도를 탔다. 두서면사무소가 있던 인보를 지나고 전읍을 지나갔다. 예전에 우리 집이 있던 마을이었다. 마을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예전의 초가집이 있던 자리에는 새로 지은 양옥집이 서 있었다. 우리 집이 있던 자리도 가늠할 수 없었다.
택시는 전읍을 지나 곧장 미호천이 있는 하동마을로 갔다. 거기서 좌회전을 해서 미호천을 따라 올라갔다. 중동 마을을 지나고 상류인 상동 마을로 들어섰다. 역시 예전 마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끝으로 가니 공사차량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마을 끝에 차를 세운 택시기사는 공사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내년에 공사가 완공되면 멋진 호수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일본에서 가지고 들어온 아까다마석을 호수가 완성되고 나면 그 안에 던져 넣을 생각을 했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을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백운산 능선은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모습과 일치했다. 붉은 돌을 캐내던 광산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공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예전에 광산 사무실과 일본인들이 머물던 집이 있던 곳은 소를 키우는 우사가 들어서 있었다. 택시를 되돌려 나와 두서면사무소가 있는 인보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예전에 근무하던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택시기사는 언양으로 돌아가 가지산 쪽으로 가서 석남사를 들러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전적으로 그의 안내에 따를 작정이었다.
점심을 마치고 식당 가까이에 있는 두서초등학교에 들렀다. 예전의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신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그러나 운동장과 전체적인 모습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학교설립 초기 이름도 초등학교가 아닌 4년제 보통학교에 다녔었다. 65년이나 지난 옛일을 떠올린다는 게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와 다 늙어빠진 지금의 나는 동일인이 아닌 듯했다. 젊은 시절의 나는 이미 죽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듯했다.
다시 택시에 올라 언양 쪽으로 달리다가 차를 세웠다. 반곡마을을 지날 때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기사는 차를 돌려 반곡 마을로 되돌아갔다. 나는 반곡초등학교 건너편의 한 건물에 시선을 꽂았다. 도로변에 있는 이층 건물이었는데 아래층에 제일슈퍼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