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74]]9부. 귀향(5) - 글 : 김태환
건물 모양은 바뀌었지만 위치로 보아 분명 그 집이었다. 50년 전에는 건너편에 학교가 없었다. 학교가 들어서 있어 그때 당시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택시기사는 내가 시키는 대로 제일슈퍼 앞에 차를 세웠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슈퍼 뒤쪽에 굵직한 소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었다. 소나무가 예전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망설임 없이 슈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진열해 놓은 물건의 규모로 보아 장사가 잘 되는 가게는 아닌 듯했다. 가게 옆의 방 안에 젊은 남자가 있었다. 손님이 오자 방문을 반쯤 열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그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나는 깜짝 놀라 상체를 꼿꼿하게 세웠다. 손으로 눈을 비빈 다음 다시 바라보았다. 가게주인은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물건을 사러왔으면 물건부터 고를 일이지 왜 민망하게 사람얼굴을 빤히 바라보느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주인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김용삼이요. 그건 왜 물으십니까?”
“내가 아는 사람과 너무 닮아서요. 본관은 어디십니까?”
“한실 김가입니다.”
“아. 그렇군요.”
김용삼이라는 젊은 남자는 내가 한실 김씨를 아는 척 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이 지역 사람인가 물었다. 나는 내 신분이 드러나는 게 싫어 그냥 아는 척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실 김씨는 대곡천 안의 한실이라는 작은 마을에 모여 살던 김해 김씨들이 새로 만든 본관이었다.
내 짐작대로 가게 주인 김용삼은 김일환의 손자였다. 김일환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김일환은 이미 이십 년 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김용삼의 얼굴을 다시 한번 뜯어보니 오십 년 전의 김일환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었다.
나는 무엇을 살까 하고 진열장을 살피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과자종류를 진열해 놓은 선반 위와 맨 아래에 돌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김용삼에게 이 돌들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파는 것이라고 했다.
“돌을 팔다니요?”
“그냥 돌이 아니고 수석입니다. 내가 남한강에 가서 손수 탐석해 온 것들입니다.”
나는 선반 위의 돌들을 살펴보았다. 어떤 돌은 거북이의 형상을 닮기도 하고 어떤 돌은 바위섬 모양을 한 것도 있었다. 바위섬 모양을 한 수석을 가리키며 이것은 가격이 얼마나 하는가 물어보았다. 김용삼은 그 돌은 여기서 제일 비싼 돌인데 이백만 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돌 가격에 놀랐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선반에 있는 과자 몇 봉을 집어 들고 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선반 위에 올려놓은 맨 끝자락에 놓인 붉은 색이 눈길을 잡아 당겼다. 되돌아서 돌 가까이로 다가갔다.
나는 김용삼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보다 더 놀랐다. 이번에는 가슴이 방망이질을 했다. 떨리는 손으로 선반 위의 붉은 돌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