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78]]10부. 운명(3) - 글 : 김태환

2024-09-04     경상일보

자신은 전화 한 통이라도 오길 기다리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는 것이었다.

나는 요즘 들어 아내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닿았다. 옆에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느끼고 있었다. 더구나 사막을 배경으로 찍은 여자 사진 한 장 때문에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이가 들면 부부밖에 남지 않는다고 다들 그러데요. 우리는 왜 한 집에 살면서도 남남처럼 살아야하죠?”

“미안하오. 내가 소설에 미쳐서 그랬소. 당신도 잘 알지 않소. 내가 무슨 일에든 깊이 빠져 드는 성격인 걸.”

“이건 내 느낌이에요. 당신은 지금 소설에 빠진 게 아니에요. 35년을 함께 살았는데 내가 그걸 모르겠어요.”

나는 아내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내 안에서 사막처럼 들끓고 있는 소용돌이를 눈치챘다는 말처럼 들렸다.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해 커피만 홀짝 거렸다.

“나도 다른 나이든 부부들처럼 분위기 좋은 찻집에 가서 차도 한 잔 같이 마시고 싶어요.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겠지요? 설마 그런 사소한 것까지 당신 소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건가요?”

“알겠소. 내가 잘못했소. 내일은 같이 바닷가 분위기 좋은 찻집에 차를 마시러 갑시다.”

아내는 눈물을 닦아내고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내의 눈길에 송곳 같은 날카로움이 묻어 있는 걸 느끼고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이 돌들은 다 뭐예요?”

아내가 책상 위에 놓인 붉은 돌도끼를 가리켰다. 나는 이 돌도끼에서 장편소설 한 편을 뽑아낼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내는 고개를 갸웃하며 불길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붉은 색이 기분 나쁘지 않아요?”

“전에도 이야기 하지 않았소. 사람을 죽인 흉기인지도 모르지만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소. 붉은 색은 액운을 물리친다고 하지 않소. 동짓날에 붉은 팥죽을 끓여 먹는 것도 같은 의미라지 않소.”

아내는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서재에서 물러갔다. 나는 아내가 나가자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여자들의 촉이란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돌도끼를 두 손으로 들고 슬슬 쓰다듬었다. 기록대로라면 김재성 노인이 20년 전에 김용삼에게 오백만 원 가까운 돈을 주고 구입한 물건이었다. 그만큼 의미가 있는 물건이란 뜻이었다.

일이 꼬이게 된 것은 모두 김일환 때문이었다. 김일환은 반곡마을에서 주막집을 하는 남자였다. 사실은 그의 아내와 늙은 모친이 주막집을 운영하고 김일환은 뚜렷한 직업이 없는 사내였다. 농토가 있기는 했지만 채마를 가꾸는 작은 텃밭이 전부였다. 주막집은 꽤 번성했다. 언양 장에 갔다 오는 사람들이 배가 고플 때쯤 찾아드는 집이었다. 언양 장날이면 손님이 제법 붐비는 집이었다. 나는 처음에 김일환이라는 사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