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속의 꽃(16) 여뀌꽃]강가나 호숫가에 피는 소박한 야생화

2024-09-10     경상일보

여름이나 초가을의 강가와 저습한 땅에는 연한 녹색 또는 붉은빛 여뀌꽃이 핀다. 여뀌는 물가에 나서 자라고 꽃도 소박하여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 꽃은 예전에 양반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던 중인이나 상민이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표현하는 소재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여뀌는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고 한약재로 쓰기도 하며, 훈향이 나는 잎을 향신료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맛은 밭에서 제대로 키운 채소에 비하기 어렵다. 성현(成俔, 1439~1504)은 <뜰에 난 여뀌 이야기(庭蓼說)>에서 “나쁜 채소 중에 여뀌만 한 것이 없는데 그 맛이 쓰고 맵다. 장에 담가 두거나 비릿한 생선에 섞어 놓은 뒤에야 먹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입을 쏘아 얼얼하게 하고 혀를 갈라지게 할 정도로 독해서 장과 위를 해치는 것이 적지 않다.”고 하여 그 맛과 먹는 법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작은 집 바깥에 여뀌를 심었으니
가을이면 꽃이 참으로 많이 피겠구나.
난초와 국화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지만
강가 마을에 있는 듯하여 사랑한다오.
種蓼小軒外(종료소헌외) 秋來花正繁(추래화정번)
非無蘭菊好(비무란국호) 爲愛似江村(위애사강촌)

이 시는 조선 중기 문신 배용길(裵龍吉, 1556~1609)의 ‘여뀌를 심고 나서 묻는 사람에게 답하다(種蓼答人)’라는 작품이다. 작은 집 바깥에 여뀌를 심어 놓았으니 가을에는 참으로 흥성하게 피어날 여뀌꽃이 기대된다고 한 다음, 시인은 난초와 국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이 꽃을 보면 사는 곳이 마치 도회에서 떨어진 강가 마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여뀌가 저습한 강변이나 호숫가에 서식한다는 생장환경에 기초한 시적 발상이다.

성범중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명예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