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문화의 달, 울산의 문화예술 우리가 가꾸어야
훈민정음을 반포한 1446년을 기점으로 578주년 한글날이 지났다.
울산은, 일제 강점기 그 음험했던 질곡(桎梏)의 시기에 한글을 말살하려는 강권(强權)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말 지키기에 일생을 바친 외솔 최현배 선생을 보유한 고장이다.
그 나라의 문화는 그 민족의 글과 말에 가장 진하게 반영되어 있으므로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류에 열광하는 세계인들이 K-Culture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한국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고무적인 것은 세계 7000여 언어 중 소멸 가능성이 있는 3000여 가지 언어의 어려운 발음도 한글로 기록 보존할 수 있다고 하니, 새삼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의 과학적 우수성을 느끼게 된다.
10월은 ‘문화의 달’이다.
가을을 맞아 울산시에서는 35년 만에 부활한 ‘울산공업축제’를 10일부터 13일까지 개최하였다. 이달에는 전국적으로도 많은 문화행사가 있고 울산예총이 주최하는 제44회 ‘울산예술제’가 10월29일 서막식을 시작으로 울산문인협회의 ‘가을밤 문학축제’를 비롯해 울산음악협회, 울산연극협회, 울산국악협회 등 10개 지회의 공연과 발표회, 전시회가 11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인간이 있는 곳에 문화가 있다.
울산은 한국문화가 집대성된 곳이다. 외솔이 지킨 한글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문학 ‘처용가’, 불후의 명작 ‘갯마을’을 남긴 작가 오영수를 배출한 고장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국보 반구천 암각화는 울산이 한반도의 선사 유적지로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문화와 포경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임을 말해 준다.
그 옛날 포경산업을 재현하는 고래축제, 달천철장의 철기문화 유산은 쇠부리 축제로 보존·구현하고 있다. 게다가 마두희축제, 슬도 문화제, 옹기축제가 열리고 영남알프스와 태화강 대숲, 대왕암공원의 곰솔이 있는 울산은 역사, 인문학의 보고이며 인문과 자연이 어우러진 천혜의 문화도시이다. 풍부한 자산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인문예술문화를 손쉽게 향유할 수 있도록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층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구나 청주에는 과거 담배를 생산하던 연초제조창이 복합문화공간으로, 군산은 일제의 곡식 수탈을 위한 쌀 저장 창고를 다목적 공연장으로 개조하였다.
국가 기간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며 연간 1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했던 수원연초제조창도 2003년 가동을 중단하면서 리모델링해 시민의 휴식과 문화 충전을 위해 아카이브 공간, 시민들의 휴게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처럼 오래되어 잊히고 버려진 장소도 쓸모있는 공간으로 재활용해 사용할 때, 잠자는 문화는 살아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울산에도 피폐해가는 원도심을 다시 문화의 거리로 조성한 중구, 3년 전 남구에서 생선 냉동창고를 개조해 ‘장생포 문화창고’로 부활한 경우도 있다. 문화의 개선을 위해 쇠를 녹여 보습을 만드는 마음으로 철기의 명성을 문화 대장간으로, 울산 전역을 고루고루 숙성하고 발효하는 문화 양조장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내기는 어려우나 있는 문화자산마저 사장(死藏)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울산문화의 발전은 곧 세계문화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므로 우리 손으로 예술, 문학, 역사를 잘 가꾸고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이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울산의 미래를 여는 중요한 시기이므로 산업수도의 강점을 굳건히 하면서 문화·관광·체육 분야를 성장 동력으로 삼아 울산의 새로운 미래 60년을 열어나가겠다”라고 한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다.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울산, 예술이 더욱 왕성하게 번성하는 곳, 울산의 빛나는 역사와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더 많은 문화자산을 발굴·창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법정 문화도시’ 울산의 면모를 한층 문화적으로 가꿔나가는 것은 대한민국 문화의 융성과 결부되어 있다.
권영해 시인·전 울산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