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40)국화야 너는 어이-이정보(1693~1766)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춘풍 다 지나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해동가요>
국화 피는 계절이다. 국화는 문밖에서 찬바람 쓸어안고 잎눈에 맺힌 서리 진액이 서려 향기를 품을 때, 나는 종일 문 안에서 뒹굴며 어정 시월을 보낸다.
마당귀 풀 더미 속에서 없는 듯이 지내다가 서리 내려 무성하던 풀들이 잦아드니 살며시 고개 들고 피는 꽃이 국화다.
젊은 날에야 누구라도 봄에 피는 붉은 꽃만 꽃인 줄 알았던 것이다. 아무리 오상고절에 군자의 꽃이라 해도 노란 국화를 좋아할 줄을 정말 몰랐다. 설혹 고독을 견디지 못해 만화방창 꽃 시절 다 보내고 홀로 고독하고 은일한 군자답게 피는 꽃이라 해도 어려운 시절은 있는 법.
주어진 삶을 오롯이 인내로 살아 낸 군자와도 같은 꽃, 질긴 세월을 견디어 온 황국이 피는 계절이다.
가을의 뜰에 내려서서 다시금 국화를 본다. 어쩜 이리도 순수한 노랑일까. 인간의 상처 많은 아픔을 묵묵히 지켜보며 피는 걸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이정보 초상화를 본적이 있다. 얼굴이 깡마르고 눈빛이 예리하며 번득이는 섬광처럼 엄정한 성품이 얼굴에 쓰여 있다.
대제학과 이조, 예조 판서를 지낸 군자(君子)다운, 바로 오상고절의 선비였다. 서릿발도 꿋꿋이 이겨내는 절개, 시조(時調)의 대가로도 해동가요에 78수가 얹혀있다.
따뜻한 봄 사월 다 지나고 고난과 시련의 계절, 나뭇잎 떨어지는 추운 날에 진지하고 철학적인 풍모로 서리를 이기는 국화를 통해 이정보 선생은 굽히지 않는 자신의 지조를 읊조렸다.
누구나 외로움과 감춰진 고단함을 이겨내는 고통이 어찌 없으랴. 진실은 평생을 걸고 이겨낸 고독의 열매, 인간의 양심에 뿌리를 두고 사람은 지조의 뜻을 꽃 피운다.
국화는 문밖에서 어둠을 쓸어안고 오상고절에 홀로 핀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