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이은규 ‘청귤’
바라보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고이는 침샘을 떠올리게 한다 봄부터 차오른 푸를청 푸를청 청귤은, 콧잔등을 찡긋하게 만드는 청귤의 꿈마저 사라진다면 어떠할까 한낮의 여름, 이제 가을 겨울의 대기를 향해 천천히 사라지는 일만이 남아 있을 것 만약 청귤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바구니마저 사라진다면 탁자마저 사라진다면, 그 풍경에 대한 기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면 어떠할까 사랑스러운 절망, 무르익기 전 시큼하다 사라진 이름들 청귤을 가지런히 썰어 흰 설탕을 뿌리는 방법에서부터, 깨진 무릎으로라도 국경을 넘어 이뤄야 할 철없는 꿈에 이르기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를청 푸를청 멍든 빛으로 빛나는 청귤의 표정에 대해
청귤의 신맛처럼 강렬한 청춘의 꿈
청귤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한쪽 눈마저 찡그려진다. ‘청귤의 꿈’은 이처럼 세포 하나하나가 솜털처럼 일어서는 강렬한 반응을 일으키니 그 꿈이 사라진다면 참 심심할 것 같다. 더구나 청귤마저, 청귤에 대한 기억마저 사라진다면, 세상에 청귤은 존재조차 하지 않은 게 될 터인데, 혀끝에 닿던 강한 신맛과 없음 사이의 간극이 크다.
그런데 ‘무르익기 전 시큼하다 사라진 이름들’이란 구절을 보면 이 청귤은 그저 청귤이 아닌 ‘청춘’의 다른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존재만으로도 공기에 진동을 일으키고 코끝에 향기가 감돌 것 같은 청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종종걸음을 치는, 어른의 문턱을 넘기 위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청춘. 하지만 그 꿈은 좌절되고 모니터 뒤로, 문 뒤로, 방안의 그늘 속으로 조용히 사라져 버리는, ‘사랑스러운 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푸른 빛에 희망을 건다. 푸른 빛은 멍든 빛이고 멍이 들었다는 것은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여서 어딘가에 부딪혔다는 것이므로. 어쩌면 무릎걸음으로라도 기어가기 전 잠시 잠깐의 짬, 잠시 잠깐의 휴식. 그러므로 우리는 새콤달콤한 청귤 주스를 들고 문을 두드리며.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