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강의 문학과 운명
한강은 한국 문학계에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독창적이면서도 강렬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인간의 내면을 연구하며 철학적 사유를 표현하는데 탁월한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에 태어났으며 아버지 한승원 역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어, 문학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후 1993년에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이후 1994년에는 소설가로 전향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문학 세계는 존재의 고통, 상처, 소외, 그리고 이와 얽힌 운명적 문제들을 주요 테마로 다루고 있다.
먼저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가 채식을 선언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내적인 욕망과 억압된 본성을 주시한다. 그녀가 채식을 선언한 이유는 꿈에서 본 장면으로 그녀가 살아오며 느꼈던 감정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점차 기존의 질서와 규범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작가는 개인의 자유와 타인의 시선, 그리고 사회적 억압 사이에서 각자 자신의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지를 관찰하며, 그 과정에서 인물이 겪어야 하는 아픔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채식이라는 식생활의 변화를 다룬 것이 아니라, 구속된 심리와 그로 인해 파괴된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그녀는 본능적 충동을 거부하며 채식으로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려 하지만, 점점 소외되고 파괴된다.
소설에서 운명은 외부의 영향이 클수록 개인의 선택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선택에 따라 운명의 결과도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소년이 온다>에서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작가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고통에 갇히고, 상황에 휘말리는지 보여준다. 집단 학살의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개인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겪어야 하는 괴로움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주인공 동호는 당시의 현실과 맞서 싸우려 하지만,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작가는 역사의 한복판에 선 개인이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다.
소설에서 운명은 주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고난과 상처로 표현되지만, 저항의 가능성도 내포되어 있다. <그대의 차가운 손>에서 작가는 조각가 장운형이 인물들의 신체를 석고로 떠내는 과정에서 모델인 그들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하는 내적인 아픔을 드러낸다. 가슴에 차지한 어두운 감정과 상처를 섬세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소설은 결함에서 생긴 상처와 고통에서 진실을 향한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괴로움은 우리 모두 직면해야 하는 현실로서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괴로움이 없는 공간은 없다. 태어나 누구나 걸어야 할 수밖에 없는 혼자만의 길은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운명이란 개인의 역경과 멍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새로운 현실성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암시하기도 한다. <희랍어 시간>에서 작가는 삶과 죽음, 상실과 고독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소설의 논제는 언어가 지닌 치유의 힘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그린다. 작품은 사람이 겪는 상실감과 공허감 그것으로 인해 파생된 환경의 변화들을 묘사하며, 그 상황에서 삶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를 둘러싼 현실은 피하기가 힘들겠지만,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함께 존재한다. 내가 거쳐야 하는 혼자만의 터널은 결국 나의 판단과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여러 상황에서 견디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희망을 심는 것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작가는 작품마다 철학적 사유를 자극하고 있다. 우리에게 생사(生死)에 관한 깊은 시각을 갖도록 권유한다. 운명에 의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도 강인한 존재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비관적인 사색을 넘어서, 개척할 수 있다는 격려를 동반하고 있다. 명(命)은 이미 태어난 시간으로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운(運)은 어려울 순 있지만 어떤 마음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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