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내의 초록지문(10)]공원은 터미널이다
10월의 공원은 분주하다. 떠날 것들과 새로 도착한 것들이 짧은 시간을 공유하는 계절인 덕분이다. 이별을 앞둔 씨앗들은 몸을 한껏 가볍게 만들려 한다. 바람의 등에 제대로 올라타려면 무게를 덜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씨앗은 이곳을 장거리 여정의 중간 기착지로 삼는다. 오랜 여정을 마친 것들은 다가올 해를 대비해 휴식을 준비한다.
태화강 국가정원 안내센터에서 내려앉은 가을을 바라본다.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햇살을 즐기는 중이다. 자리를 깔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거나 수다 삼매경에 빠진 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다. 풍요로운 환경을 제공하고 문화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 도심 속 공원의 역할이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찾도록 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울산 시민들에게 태화강국가정원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정원이 일상에서 얻은 상처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착안한 도시숲 예술치유 워크숍 ‘어떤 오감’이 진행되고 있다. 자연의 생명력을 다양한 감각을 통해 확인하고 지친 마음에는 위로를 선물하는 것이 목적이다. 죽어가던 강이 되살아난 치유의 스토리를 간직한 태화강과는 아주 어울리는 구성이다. 예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이 정원이라는 장소를 이용해 다양한 삶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꽤 멋진 일이 아닐까.
프로그램의 여러 갈래 중 하나인 문학치유 워크숍 ‘여행하는 씨앗’에서 3주간의 글쓰기를 진행했다. ‘상처를 대하는 나무의 자세’를 주제로 참가자들과 함께 내면을 탐색하는 작업은 내게도 의미가 컸다. 상처를 받으면 동굴로 숨거나, 무작정 밖으로 나가 달리기도 하고, 햇빛을 받으며 스스로 단단해지는 내면, 글쓰기의 과정은 내면의 아이에게 위로의 주문을 건네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워크숍 중 ‘공원이 터미널이다’라는 첫 단락을 제시한 후 이어쓰기를 진행했다. 힘든 일은 잊고 멀리 떠나기를 바라거나 미련 탓에 떠나지 못하는 마음, 미래에 대한 불안이 담긴 문장을 나누며 서로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워크숍 내용은 이번 주말, ‘도시숲 예술치유 축제’가 벌어지는 자연주의 정원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제법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씨앗들이 기대감 가득한 춤을 추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여행 중인 씨앗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 지금 어느 곳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는 중일까. 목적지를 가늠해 본다.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