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존중이 필요한 사회 그리고 디자인·건축 융합 교육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문학적 성취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성과에 대해 ‘존경’을 표했지만, 작품 속 철학과 세계관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태도는 부족했습니다.
‘존경’과 ‘존중’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본질은 다릅니다. 존경은 나이나 성과, 지위에서 비롯된 ‘수직적’ 관계의 산물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에 대한 감탄에서 비롯됩니다. 반면 존중은 상대방의 지위나 성과와 상관없이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수평적’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한강 작가의 수상에 대한 반응은 성과는 존경하지만, 그 철학과 세계관에 대해서는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남겼습니다.
이는 성과 중심의 존경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반영하며, 서로 다른 관점과 시각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존경과 존중의 문제는 디자인과 건축 분야에서도 나타납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서양의 디자인 트렌드나 건축 양식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외 유명 건축가와 스타 디자이너의 스타일을 존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만의 고유한 디자인 철학과 지역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맹목적인 존경은 한국 디자인과 건축을 단지 외적인 모방에만 그치게 하고, 독창성을 저해시키고 있습니다.
일례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일본에서는 9명이나 배출했지만, 한국은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우리 사회가 외형적인 성과에 대한 존경만을 강조한 반면 내부적으로 우리의 철학과 지역성을 존중하는 데는 소홀했던 결과입니다.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은 인공지능(AI)과 화학의 융합을 통해 탄소 포집 기술을 발전시킨 연구자들에게 주어졌으며, 이는 전통적인 화학 분야와 새로운 AI 기술이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해 혁신적인 성과를 낸 결과입니다. 이 사례는 단일 분야의 성과를 넘어 다양한 배경과 시각을 존중하고 융합할 때 더 큰 도약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디자인과 건축 교육에서도 존중의 개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통적인 교육은 주로 권위적이고 정형화된 미적 기준을 따랐습니다. 아직도 한국의 디자인, 건축 교육에서는 위계를 강조하며 창의성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보다는 독립적 영역에 대한 전통적인 경험과 권위에 대한 존경을 강요하는 폐쇄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필자 또한 교육자로서 초기에는 전공 분야에 대한 존경을 위한 교육에 대한 열정과 노력만을 고집한 결과로 ‘젊은 꼰대’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과의 소통에서 존중하는 태도의 중요함을 깨닫고, 전통적인 전공 영역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생각을 존중하고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며 신뢰를 형성하자 이는 융합 교육 효과로 바로 나타났으며 비단 교육뿐만 아니라 다학제간의 융합 연구의 성과로도 이어지며 전통적 영역을 넘어 전혀 새로운 경험과 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과에 대한 존경을 넘어, 서로 다름을 존중하며 올바르게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디자인과 건축은 그 사회가 가진 가치와 철학 그리고 문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존경과 존중이 조화를 이룰 때,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존경은 성과와 지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존중은 이를 뛰어넘어 모든 개인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디자인과 건축은 그 사회의 문화와 철학을 담아내는 반영체로, 서로 다른 관점과 시각에 대한 존중이 반영될 때 비로소 진정한 발전과 독창적인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김범관 울산대학교 디자인융합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