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지령 10000호 릴레이 칼럼]취재 현장이 그립다

2024-10-25     경상일보

경상일보 창간 약 2년 전의 6·29선언에 따른 언론 자유화로 복간, 신생 신문이 많이 생겨났다. 인구가 훨씬 적은 도시에도 발간되자 울산에도 바람이 불었다. 신문의 역할과 존재가치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말하지 않았는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고.

35년의 성상. 되돌아보니 아득하다. 기자 초년병 시절 동고동락한 동료들이 먼저 떠오른다. 1기 수습기자 공채와 연수, 수습 생활과 창간기념식, 경찰서 출입 때 조폭간 폭력사건 취재 등을 함께 했었다.

태화강 살리기 캠페인, 직할시(1995년 광역시로 명칭 변경) 승격, 국립대와 KTX울산역 유치, 박물관 설립과 태화루 복원 등 수많은 현안을 함께 취재하고 보도한 동료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온갖 애환과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개인적으론 지령 1호의 애환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개월 준비 끝에 독자들께 선보인 창간호. 울산 최초 종합일간지의 탄생을 서울, 부산, 진주, 포항, 경주 등에 알렸다. 경남 전역과 경북 일부를 취재·배달 권역으로 삼았다.

기대와 설렘에 들떠 있던 전 임직원이 자축하고, 여기저기 축하의 울림이 진동했다. 그 잔칫날의 환희가 식기도 전에 필자에겐 전혀 예상치 못한 ‘낙종’의 아픔이 찾아왔다. 부장의 긴급 호출로 접한 부산 유력지의 보도는 다국적기업의 ‘이산화티타늄 생산공장, 온산공단 입주설’이었다. 당초 대만에 지을 계획이었으나 ‘공해공장이란 이유로 현지 반대가 심해 온산공단으로 방향을 돌렸다’는 요지였다.

수습기자로 어영부영하다가 창간 직전에야 보사, 교통, 환경 등의 취재업무를 맡았는데 발간 첫날의 낙종에 그저 어리벙벙할 뿐이었다. 취재지시가 떨어졌지만, 문과 출신이라 화공 분야는 막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고민 끝에 서점으로 달려가 화학 사전과 환경 서적들을 샀다. 공부해가면서 해설기사를 쓰는데 꼬박 밤을 새웠다. 그때 ‘낙종은 한번이면 족하다’고 다짐했었고, 기자 생활 내내 자양분이 되었다.

환경기관·단체를 순회하고, 제보 주민들도 수없이 만났다. 대기오염 사고는 물론 비가 오면 공단으로 달려갔다. 강산성 폐수의 도랑, 바다 유입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십리대숲 보존, 태화들(현 국가정원) 개발 반대 여론형성 등에도 발품을 보탰다. 공해도시 오명을 벗는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경상일보가 고맙고, 취재현장이 그립다.

기쁨과 보람의 더 큰 기억도 많다. 우선 광역시 승격이다. 창간호 1면 머리기사로 ‘울산직할시’를 외친 뒤, 그 성취 과정은 길고 험난했다.

1991년 지방의원 선거로 부분적인 지방자치제가 부활했다. 시의회를 중심으로 직할시승격추진위가 결성되고, 시민 염원을 모아 1992년 대선 때 공약화에 성공했다. 숱한 난관을 뚫고 95년 울산시와 울주군의 통합 이후 2년 반 만에 울산은 국내 6번째 광역시가 됐다.

승격 운동 때 원고지와 씨름하며 야근하거나 밤새운 날이 다반사였다. 석간 시절이라 마감 시간에 최대한의 기사 출고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범시민적 열기가 뜨거운 만큼 보도 경쟁도 치열했다. 필자에겐 울산과 경남의 신문 간 ‘보도 전쟁’이었다. 도세의 큰 이탈을 우려한 경남의 반대 논리도 거셌다.

우여곡절 끝에 최대 난관이던 경남도의회 의견수렴을 통과했고, 1996년 말 국회 의결을 거쳐 1997년 7월15일 대망의 광역시 승격까지 취재 시계는 멈춤이 없었다. ‘비화 울산광역시’란 제목으로 통판 100회에 걸쳐 연재하기도 했다.

국립대와 KTX울산역 유치에도 경상일보는 선두에 섰다. 범시민추진기구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고. 시민 열망의 불을 지피고, 모으고, 키우는데 한눈을 팔지 않았다.

2003년 9월 청와대에서의 부산·울산·경남 8개 언론사 국장단 인터뷰는 잊을 수 없다. 울산 유일 참석자인 필자의 “우리나라 산업의 심장부인 울산의 당면 최대 현안은 고속철도 울산역 설치”라는 질문에, 대통령은 “110만 울산에 역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배석한 장관에게 이를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울산역이 확정되는 순간이었고, 대서특필했다.

그 외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듯하다. 분명한 것은 창간 이후 경상일보는 울산의 대변지이자 사회적 공기(公器) 역할을 하면서 그 역사를 한 획, 한 페이지씩 정성스레 써왔다는 사실이다.

이제 지령 1만호를 새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이슈에 대한 참된 정보를 제때 제공하며 소통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적 갈등의 조정 역할과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신문의 환경이 크게 변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시대에 구문 취급을 받기 쉽다. 단, 신속성은 힘들더라도 정확성과 공정성, 깊이는 다르다. 미래의 신문 방향을 제대로 잡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더 큰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

송귀홍 전 경상일보 전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