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110]]13부. 흐르는 물(1) - 글 : 김태환

2024-10-28     경상일보

K의 소식을 들은 건 전시회가 시작되기 하루 전이었다. 소식을 전해 온 건 경주의 김은경 시인이었다. 먼저 김동휘의 글이 실린 문학잡지를 돌려주지도 못한 상태였다. 책을 돌려주기 위해 김은경 시인을 만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와 대뜸 한 말은 K가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막으로 갔던 K가 무사귀환을 한 것으로 알아들었다. 그러나 K가 돌아온 것이 아니고 그의 유골이 돌아온 것이었다. 정말 돌아온 것은 그의 아내인 김동휘였다. 사막에서 죽은 K의 주검을 찾아냈던 것이다. K는 한 줌 재가 되어 그녀의 손에 들려 돌아왔다.

나는 K의 주검에 애도하기 보다는 사막으로 달려가기 위해 상용비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20년 동안 마음에만 품고 있었던 그녀가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김은경 시인은 김동휘가 K의 유골을 반구대 암각화 앞에 자연장으로 뿌렸으면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의도를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사연댐은 울산시민의 상수도원이다. 함부로 유골을 뿌리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골을 강이나 바다에 뿌리는 것은 위법인 것이다. 김은경 시인은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 머릿속에 번개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나는 김은경 시인에게 방법을 알고 있으니 도와주겠다고 했다. 김은경 시인은 정말이냐고 되묻고는 당장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마구 벌렁거렸다. 자연스럽게 그녀와 만날 기회가 온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녀와 만날 기회가 영영 다가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상수원이라고는 하지만 유골 한 줌이 수질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을 것이다.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갔었던 반곡천을 생각했다. 반곡천이 대곡천과 만나는 지점에 가면 예전에 K가 걸었던 사막길이 건너다 보였다. 사막은 사라지고 버드나무 숲이 우거졌지만 분명 사막이 시작된 곳은 그곳이다. 김동휘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 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이십 분 정도가 지나니 다시 전화가 왔다. 당장 시내에서 만날 수 없느냐고 했다. 나는 홍수에 떠내려가는 작은 버드나무처럼 마구 물살에 휘말리는 기분이었다. 내 의지대로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끌어당기는 대로 마구 휩쓸려 가는 것 같았다. 과연 20년이 지난 그녀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양치질을 한 번 더하고 제일 아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내는 그런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디를 갈 것인지 물었다. 내가 얼른 대답을 못하자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20년 동안이나 가슴에 품었던 여자를 만나는데 아내를 데려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