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지령 10000호 릴레이 칼럼]1만호에 밴 시간과 기억
경상일보가 창간 이후 발행한 신문 호수가 곧 1만 호에 이른다. 역사의 파고 속에서 시대의 등불로, 공공의 목소리로 그 역할을 다하며 지금에 이른 경상일보 여러분께 찬사와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필자와 경상일보와의 인연은 기획취재 자문 교수 역할로 시작된다. 2000년대 중반, 경상일보가 야심 차게 진행한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의 곁가지인 ‘살고 싶은 도시 울산’이라는 주제의 기획취재에 자문역할을 맡으면서다.
당시 정부의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라는 정책과 맞물려 전국 곳곳에 혁신도시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국토의 균형발전, 그리고 인본주의, 문화주의, 지역적 정체성 구축 등 근사한 개발 패러다임을 앞세웠지만, 실상 이들 대부분은 개발이익을 노리는 시장의 논리가 깊이 개입되어, 마치 토건국가가 된 듯 개발 광풍이 휘몰아칠 때다.
이 같은 시대 분위기 속에서, 경상일보는 도시디자인에 눈을 돌려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시민 여론과 시 정책 조성을 위해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것은 실로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지방신문에서 일상의 삶을 담는 도시 환경을 고민하고, 살고 싶은 도시 울산이 되도록 현재를 진단해 보자는 선언이었으니, 가히 도전적인 아이디어라 할 만 했다.
‘살고 싶은 도시 울산’의 기획 취재는 김창식 기자를 중심으로 발 빠르게 진행되었다. 취재 방향은 명확했다. 연재 기사 첫 회에 언급되었듯이, “산업공단 중심의 무분별한 도시계획과 환경에 문제 제기”를 하고, “삶이 있는 우리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우리 자신의 질문을 통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위해 기획물 ‘살고 싶은 도시 울산’을 연재한다”라고 적시했다.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진행된 이 취재는 2006년 9월경부터 12월 말까지 격주로 연재되었는데, 김 기자의 도시에 대한 통찰력과 분석력은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회 발행되는 신문을 볼 때면, 필자가 두서없이 제공한 자료와 복잡한 이슈를 쉽게 풀어 설명해 신문을 읽을 가치가 있게 만드는 능력이 참 인상적이었다.
4개월 남짓 짧은 기간에 국내외를 넘나들며 김 기자와 함께 많은 곳을 답사했다. 대구, 전주 등의 원도심 골목길과 거리 곳곳을 누볐다. 일본 기타큐슈와 구마모토 시청을 찾아가서 그들의 계획과 정책에 담긴 철학을 듣기도 했다. 담당 부서의 좁디좁은 회의실 책상 위에 많은 자료를 펼쳐놓고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통해 일본 공무원의 한 단면을 엿볼 수도 있었다. 구마모토시는 취재진에게 승용차를 제공해 주었는데, 동행한 공무원을 통해 도시계획과 실천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일본 구마모토현의 혁신적인 도시 재개발 및 건축문화 사업인 구마모토 아트폴리스(Kumamoto Art polis)의 답사는 개인적으로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은 잊지 못할 귀한 경험이었다.
‘살고 싶은 도시 울산’의 연재 기사가 보도되면서, 울산발전연구원(현 울산연구원)의 요청으로 연구원의 계간지 ‘울산발전 16호’에 필자의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 다루었던 울산 원도심의 오밀조밀한 도시 조직(urban tissue)의 중요성과 유지, 활용에 관한 내용이 주목을 받았던 모양이다. 신문 기사가 지역 연구기관이나 시 당국의 관심을 받아 현실적인 대안 연구와 정책개발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도 보람으로 남는다.
이듬해인 2007년 6월, 울산의 ‘사라지는 근대 문화유산’이라는 주제의 기획취재 자문을 또 맡았다. 이미 사라졌거나 훼손되어 방치된 울산의 근대 문화유산을 도시의 재발견 측면에서 조명하고, 울산의 정체성과 지역성을 모색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과 국내 주요 도시의 근대 문화유산 활용 사례를 둘러보는 좋은 기회였다.
필자는 한동안 ‘경상시론’ 필진으로 참여해 울산의 건축문화와 도시환경에 관한 많은 얘기를 하면서 독자들의 격려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 속의 도시·건축’이라는 주제로 1년 동안 12회에 걸쳐 연재했는데, 감회가 깊은 연재물로 기억된다. 영화와 도시, 영화와 건축이라는 다소 낯선 관계 맺기를 통해 우리네 삶과 문화가 어떻게 도시 공간 속에 촘촘히 연결되고, 도시와 건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고 싶었다. 또 몇 해 전에는 경상일보 인문학 강좌인 로고스칼리지에서 울산 시민을 위한 ‘매력적인 도시 아름다운 건축’이라는 주제로 10회에 걸쳐 강의도 했다.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귀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해 준 경상일보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돌이켜 보면, 필자의 삶의 여정에서 도시와 건축의 중요한 가치를 경상일보와 공유하고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지면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지식과 경험을 나눌 수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경상일보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과거에 비해 최근 지역에 대한 시민사회의 참여와 지역 리더들의 도시에 관한 관심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진 것도 경상일보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령 1만 호에 짙게 밴 땀과 열정은 울산의 생생한 기록이자 역사의 연대기이며, 가히 울산의 큰 자랑이라 할 만하다. 앞으로도 경상일보는 사회의 거대한 거울로서 지역사회의 사건과 이슈를 반영하고, 진실을 비추는 역할을 다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정민 건축가 영산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친환경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