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거나 시퍼렇거나 ‘단풍 실종’

2024-11-05     박재권 기자
“예전 같았으면 절정인데, 11월초인데도 좀처럼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는 모습을 보기 어렵네요.” “울산의 명소 간월재 억새도 예년보다 시들시들한 것 같고, 이래저래 가을의 운치가 예년만 못한 것 같아 아쉽네요.”

지난 여름 역대급 무더위가 장기간 지속된 여파로 울산 도심은 물론 주요 단풍 명소에서도 제대로 된 단풍을 만끽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국내 단풍 명산인 설악산과 한라산 등에서 ‘단풍 절정’이 지연되는 가운데 울산지역 주요 산에서도 단풍 절정이 ‘실종’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단풍 시기가 더 늦어질 가능성이 있고, 심할 경우 단풍 절정도 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울주군 영남알프스 일대로 단풍 구경을 위해 연인과 함께 산을 오른 조모(30·남구 신정동)씨는 간월산 중턱부터 정상 부근까지 물들지 않은 나뭇잎을 다수 관찰한 뒤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간월재의 억새 또한 예년보다 시들시들한 모습인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지난 여름 전국을 강타한 무더위 탓에 나무들이 옷을 갈아 입을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산 전체를 기준으로 정상에서부터 20%가량 물들었을 때를 ‘첫 단풍’이라고 칭한다. 80%가량 이상이 됐을 때는 ‘단풍 절정’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단풍 절정은 첫 단풍이 시작되고 약 20일 뒤에 나타난다.

울산 울주군 상북면 가지산에서는 지난달 17일 첫 단풍이 관측됐다. 하지만 이후 산 중턱부터 정상 부근까지는 여전히 푸른 잎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게 확인된다.

전문가들은 올해뿐만 아니라 소위 ‘늦게 오고 빨리 가는 단풍’이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평년 기온이 상승한 탓에 오랜 기간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나무들이 충분히 물들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울산생명의 숲에 따르면, 이들은 최근 현장에 나가서 나무 등을 살펴본 결과 단풍이 물든 나무조차 예년보다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을 확인했다.

문제는 단풍 시기가 계속 늦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단풍 시작 시기가 늦어질 뿐만 아니라 기온과 일조량의 균형이 깨지며 나무의 생장 과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여름에 이어 가을까지 고온 추세가 이어지다가 기온이 급격히 하락할 경우 잎이 제대로 물들지 못한 채로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울산생명의 숲 관계자는 “도심 속 가로수 등은 울긋불긋 물 든 경우가 보인다. 하지만 온전히 물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산 7부 능선 위쪽으로는 이미 겨울철 온도에 가까워 단풍이 제대로 물들지 못하고 떨어지는 경우가 다수 목격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는 특별히 단풍 절정 시기가 없을 수도 있다. 앞으로는 더 단풍 시기가 더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폭염에 지친 몸과 마음을,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가을의 단풍 절정으로 치유하려던 시민들의 아쉬움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박재권기자 jaekwon@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