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17)]국제행사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과 매너

2024-11-08     경상일보

두 달 전 문화인이 지켜야 할 소양에 대해 기고한 바 있다. 지인 한 분이 좋은 참고가 되었다고 격려해 주면서, 자동차 탈 때와 상급자와 함께 걸을 때 특별한 의전 순서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자동차 탑승시, 운전기사가 있는 경우와 차 주인이 직접 운전하는 경우가 다르다. 운전기사가 있는 경우 운전석 대각선 뒷좌석이 제일 상석이고 다음으로 운전사 바로 뒷좌석, 운전사 옆 좌석 순이다. 차 주인이 직접 운전하는 경우는 차 주인의 옆좌석이 제일 상석이고 다음은 운전사 대각선 뒷좌석, 운전사 바로 뒤쪽 좌석 순이다.

두 명이 보행할 경우, 윗사람이 도로에서 가까운 쪽으로 걸어야 하고, 3인일 경우에는 최상위자가 중간에서 걷고 차 상위자가 도로 가까운 쪽에서 걸어야 한다. 아래 그림을 참고하시고, 헷갈릴 때는 ‘나의 우측이 항상 상석이다’라는 원칙을 명심하면 되겠다.

오늘은 국제 행사시 알아야 할 에티켓과 매너, 즉 의전(儀典) 관련 몇 가지 이야기를 할까 한다. 의전(protocol)이란 예를 갖추어 베푸는 공식 행사의 예법이며, 특히 국가간 또는 국제관계에서 적용되는 규범이고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행위이다. 현대사회에서 통용되는 의전은 서양식이 표준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동양이 더 오래됐고 그 뿌리도 깊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이 참으로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고 형식적인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추세에 따라 의전도 점차 간소화되고 실용주의적 행태로 바뀌고 있다. 의전의 제일 원칙은 역시 ‘우측이 상석’이다는 점이다. 상급자와 손님은 호스트의 우측에 서야 한다. 의전 서열을 결정할 때는 현·전직, 연령, 행사와의 유관성, 정부 산하단체 또는 관련 민간 단체의 장인지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다자 정상회의시 의전 서열은 국가원수인지 정부 수반인지를 구분하고 동일 그룹 내에선 재임 기간을 따진다. ‘Troika’라고 하여 국제 행사의 주최국이 직전 및 차기 개최국을 우대하는 경우도 있다. 행사 성격에 따라서는 국명의 알파벳순 또는 선착순으로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오랜 관행없이 실행된 것이라면 손님을 홀대했다는 평가를 받기가 십상이다.

1616년 스웨덴 대사의 영국 부임 환영 행사 후 프랑스 대사 일행의 마차가 선두에 서자 스페인 대사측이 무장 호위병을 시켜 프랑스 대사 일행을 마차에서 끌어 내렸고 이 사실을 보고받은 루이 14세는 스페인과의 외교관계를 단절시킨 사례가 있다. 17~18세기 유럽에서 이러한 의전 다툼이 자주 발생하자, 나폴레옹 전쟁 후 유럽의 질서를 재편했던 비엔나 회의에서 의전서열을 ‘주재국 정부 앞으로 통보된 주재국 도착 일자순’으로 하기로 정했다.

다음은 국기 게양이다. 다른 나라 국기들과 함께 거는 경우, 홀수일 때는 중앙에 태극기를, 태극기의 우측에 의전 서열이 높은 나라의 국기 순으로 건다. 짝수인 경우에는 보는 방향에서 제일 왼쪽에 태극기를, 그 우측으로 의전 서열순으로 게양한다. 의장기의 경우, 건(乾)이 위쪽에 곤(坤)이 아래쪽에 있어야 하고 붉은 문양이 오른쪽, 파란 문양이 왼쪽에 있으면서 ‘S’자 모양으로 되어 되있는지 유의해야 한다. 태극기와 외국기를 교차로 게양하는 경우, 태극기 깃대가 앞으로 놓이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는 예포와 레드카펫이다.

예포는 방문국가 원수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뜻에서 군대나 군함이 일정 수의 공포탄을 발사하는 예식이다. 해군함정이 외국 항구를 방문할 때 함포의 사정거리 밖에서 7발을 발사하여 “우리는 무장이 해제되었다”고 알린 16세기 해군의 관례에서 유래한 것이다. 왜 7발인가 하면 당시 해군함정 적재 대포수 7대가 표준이었고 포탄을 발사하고 재발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어 7발을 쏘고 나면 당장은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화약은 습기에 약한 질산나트륨으로 제조했기 때문에 습기가 많은 함정에서 1발 발사 동안 육지에서는 3발 발사가 가능해서 3 곱하기 7, 즉 21발이 육상에서의 예포 수로 정해졌다. 이러한 21발의 예포를 ‘로얄 살루트(Royal Salute)’라고 부른다.

레드카펫은 염료 가격이 고가였던 중세부터, 특히 상록 참나무 진액을 먹고 사는 케르메스라는 곤충의 알을 말린 다음 빻아서 나온 색소를 사용했기 때문에 왕이나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빨간색은 권위를 상징했고, 유럽의 궁정에는 언제나 레드카펫을 깔았다.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려면 레드카펫은 필수여서 ‘Red Carpet Treatment’라는 영어 표현도 생겼다. 마지막으로 주류인데, 식전주, 식탁주, 식후주로 나누어 서빙해야 한다.

식전주는 식탁에 앉기 전 20~30분 정도 응접실이나 리셉션 룸에서 환담을 하면서 식욕을 돋구기 위해 마시는 술이다. 주로 위스키, 진, 보드카나 샴페인 또는 세리, 포트 등 주정 강화 와인을 사용한다. 식탁주는 식탁에서 음식과 함께 먹는 술인데, ‘붉은색 고기(육류)와는 적포도주, 하얀색 고기(어류)와는 백포도주’라는 원칙이 있다. 식후주는 손님들이 식사 후 별실로 옮겨 커피나 홍차를 마시는 동안 함께 서버되는 술인데, 브랜디, 위스키, 럼이나 강화 와인 등이 제공된다.

포도주는 시각, 후각, 미각을 모두 사용해야만 좋고 맛있음을 최적으로 선별할 수 있다. 적포도주는 파란빛이 날수록 젊고 오래된 것일수록 노란빛을 띠는데 색이 맑고 반짝이듯 광택이 날수록 보관이 잘된 좋은 포도주이다. 포도주는 젊을수록 꽃 과일 향기가 나고 오래될수록 버섯, 담배. 바닐라 냄새가 나며 향기가 쾌적하지 못하고 코르크 냄새가 심하게 난다면 디캔팅이 필요하다. 맛보기로는 포도주를 약간만 입에 넣고 혀끝으로 굴리듯, 천천히 감별해야 하며 네 가지 맛이 균형있고 조화를 이룬다면 최고의 포도주이다.

박철민 울산대 교수 전 울산시 국제관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