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119]]13부. 흐르는 물(10) - 글 : 김태환
그러려면 학자들의 치열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화 예술로의 승화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어도 문양의 해석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주인공인 유리 여사가 나와 천전리 서석문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을 이야기 했다. 나는 또박또박 발음하는 유리여사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이양훈 소설가의 번역으로 또 한 번 더 듣는 셈이었다.
“나는 일본인이지만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곳으로 따지면 나는 조선인인 셈입니다. 여기 가까운 곳에 백련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습니다. 나는 어렸지만 그곳의 풍경을 기억 속에 담고 있습니다. 저는 한일 수교가 이루어지고 몇 년 후에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천전리 서석문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아직 서석문이 학계에 보고가 되기도 전이었지요. 여러분은 신기하지 않습니까? 서석문은 학계에 보고하기 전부터 이곳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쉬러 왔던 곳이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지요. 나는 처음 천전리 서석문을 보는 순간 전율을 느꼈습니다.”
나는 유리여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재성 노인이 기록해 놓은 내용을 떠올렸다. 천전리 서석문은 바로 유리 여사의 친아버지인 일본인 순사 마츠오가 김용삼의 할아버지인 김일환에게 살해 된 곳이었다. 유리 여사는 우연하게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된 장소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귀신이 없다고는 하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들어간 것 같았다.
“저는 바위에 새겨진 그림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때부터 서석문 문양은 내 그림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제 그림이 꽤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 개인적인 일 때문 이었습니다. 저는 서석문 문양에서 받은 느낌을 하나하나 감정을 실어 그리려 애를 썼습니다. 그림들이 지극히 제 개인적은 영감에 따라 그린 것이므로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한 점 한 점 설명을 드릴수도 없는 점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유리여사의 설명이 끝나고 모두 아래층으로 테이프 커팅을 하러 이동했다.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한꺼번에 몰려다니지 않고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며 이동했다. 테이프 커팅을 하는 사람도 가운데 유리 여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네 명씩 섰다. 나는 겨우 오른쪽 끝줄에 설 수 있었다.
테이프 커팅을 마친 후 전시된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그림들은 모두가 20호를 넘지 않는 작은 것들이었다. 첫 번째 걸려 있는 그림은 너무나 눈에 익숙한 겹마름모꼴을 형상화 시킨 것이었다. 천전리 서석문의 맨 꼭대기에 그려져 있어 눈에 쉽게 들어오는 문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