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120]]13부. 흐르는 물(11) - 글 : 김태환

2024-11-11     경상일보

문양의 선 하나하나는 모두 철조망으로 그려져 있었다.

작품 제목을 보니 구속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재성 노인의 기록에 보면 겹마름모 무늬 하나는 한 마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어쩌면 마을의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울타리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뒤에 서서 유리여사와 문명대 교수와 이하우 교수를 번갈아 바라 보았다. 학문적으로 서석문양을 바라보는 학자와 예술가 사이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두 교수는 입을 굳게 다물고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유리여사도 굳이 학자들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했다.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물고 그림 앞에 잠시 서 있다 다음 그림으로 이동했다. 바로 뒤에서 댐탐방팀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김은경 시인은 댐 탐방팀과 같이 어울려 있고 아내와 김동휘가 친한 친구처럼 같이 걸어오고 있었다. 눈치를 보니 그림 앞에 둘이 같이 서서 느낌을 서로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김동휘의 모습은 방금 남편의 유골을 뿌리고 온 여자같이 보이지 않았다.

나와 김은경 시인의 일정에 맞추어 따라온 걸음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림에 마음이 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처음 만난 나의 아내에게 상주행세를 할 수는 없어 태연한 척 대꾸를 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와 김동휘에게 신경을 쓰느라 그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선두가 중간쯤 왔을 때 그림과 제목을 읽어 본 나는 온 몸이 얼붙는 듯했다. 무슨 형태인지 잘 알아볼 수 없는 문양이었는데 남녀가 앉은 자세로 포옹하고 있는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림 제목은 일본어로 ‘(이타이 코이)와 시나이데쿠다사이’였다.

한국어로는 ‘(아픈 사랑)은 하지 마세요’ 였다.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서 유리여사에게 말을 건네었다.

“당신은 이 아픈 사랑의 주인공을 알고 있지요? 당신의 조선인 아버지 다케시.”

유리 여사는 두 눈을 번쩍 떴다. 통역을 하는 이양훈 소설가가 아닌 사람이 일본어를 해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다케시라는 이름에 크게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이 어떻게 우리 아버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까?”

유리 여사의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유리여사를 향해 한 발 앞으로 걸어갔다. 유리여사와 적당한 거리에서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당신은 왜 지금까지 조선인 아버지 다케시를 찾지 않으셨는지요?”

유리 여사는 먼저보다 더 놀라는 듯했다. 온몸이 자빠질 듯 크게 흔들렸다. 곁에 있는 이양훈 소설가가 유리 여사의 팔을 부축해 주었다.

“다케시. 다케시. 그는 어디 있나요? 아직도 살아있나요?”

“아직 살아있습니다. 왜 그를 찾지 않으셨나요? 대곡건업의 지분 때문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