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트럼프, 집권 2기
지난 5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J.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조지아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선거구에서 승리함으로써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함께 치러진 미국 의회 선거에서는 상원 의석 34석과 하원 의석 435석에 대한 당선인이 결정되었는데, 그 결과 미국 공화당은 상원 100석 가운데 52석, 하원 210석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임기 6년의 미국 상원 의원은 매 2년 3분의 1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선거가 치러지고, 임기 2년의 미국 하원 의원은 의석 전부에 대한 선거가 치러진다.
글을 쓰는 현재 기준으로 당선자가 확정되지 않은 하원의 27개 의석 중 18석을 공화당이 가져가게 된다면, 공화당은 의회의 양원을 장악한 다수당이 되고, 이는 행정부와 입법부 상·하원의 권력이 모두 공화당에게 주어지는 것(GOP trifecta of controlling the White House, Senate and House)을 의미하게 된다. 트럼프가 집권 2기에 자신의 공약을 정책으로 집행함에 있어 필요한 국정 의제를 먼저 설정하고, 역점 정책에 예산을 우선 집행하며, 관련 과세 정책을 입법에 반영하는 데 겪게 될 정치적 반대를 현저히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거 결과는,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9명 가운데 보수주의적 이념 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5명으로 다수인 것까지 생각하면 더 의미심장하다. 트럼프는 과거 대통령 재임 시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미국-멕시코 국경에 높은 장벽을 설치하는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집행하고자 하였으나, 의회에서 이를 반대하여 실행에 이르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이 사건에서 당시 트럼프는 국방부 예산을 전용하는 방법으로 정책 이행에 필요한 예산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텍사스주 엘패소 카운티 지방법원에서 의회 동의 없이 국방 예산을 전용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국경 장벽 설치는 결국 중단된 바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집권 2기를 맞는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키워드로 자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꼽는다. 정책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는 예측 불가능성과 상거래 주의적 접근방식이 특징으로 언급된다. 예측 불가능성과 관련하여 한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국정 현안들에 대해 그가 보인 일관적이지 않은 행보가 단순한 변덕이나 즉흥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격한 언행이나 선정적인 일화와 구설수로 종종 알려진 탓에 우리가 접하는 트럼프에 대한 인상은 광인에 가깝게 그려지지만, 갈수록 촘촘하게 법제화되고 있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 하나만 보아도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국을 안보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중국 기업들과 중국산 제품에 대한 규제의 양과 수위를 높여가는 미국이 현재 운영하는 관련 제도는 수출통제개혁법에 근거해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이 집행하는 제재 기업 리스트 제도를 포함해 13종에 이른다. 이 목록은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앞선 글들에서 몇 차례 적었던 것처럼, 이러한 미국의 정책 기조 때문에 규제 대상으로 지정된 중국 기업들과 거래해야 하는 한국 기업들로서는 관련 법을 어기지 않으며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수행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을 늘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하는 만큼 대응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경우는 비단 기업과 통상 분야만이 아닐 것이다. 두 나라 중 어느 한쪽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는 일만큼 어리석고 무모한 일은 없다.
명분과 실리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킬 때, 무엇이 올바른 결정인지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선명하게 구획되던 세계 질서처럼 우리가 수십 년간 당연한 것처럼 누려온 대전제가 바뀌고 있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조선 중기, 주전론의 득세로 조정이 친명 배금 정책을 펼친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미래의 우리는 알고 있지만 당대의 사람들로서는 알기 어려웠을 것처럼 말이다. 오판의 위험을 줄이고 실기(失期)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국인들의 이번 선택이 그들의 눈에는 주변국일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하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