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121]]13부. 흐르는 물(12) - 글 : 김태환

2024-11-12     경상일보

아니면 당신 친아버지 마츠오를 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요?”

유리 여사는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서 있을 뿐 무어라고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 거렸는데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뒤에서 걸어오고 있던 김인후를 앞으로 불렀다. 김인후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곁으로 왔다.

“이 사람이 다케시의 친 조카손주입니다. 지금 104세이신 다케시 노인을 모시고 있죠.”

“오오! 하나님.”

유리 여사는 오른 손으로 성호를 그었다. 이양훈 소설가가 후들후들 떨고 있는 유리 여사를 겨우 붙들고 있었다. 박물관 관장은 유리 여사가 많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전시실을 나와 휴게실로 안내했다. 나는 김인후와 함께 유리 여사를 따라갔다. 이양훈 소설가가 나를 보며 아는 분이냐고 물었다. 나는 오늘 처음 보는 분이지만 집안 내력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허허. 우리 김성범 작가님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어떻게 일본 화가님까지 알게 된 것인지 흥미진진하군요.”

유리 여사는 박물관 직원이 내온 음료수를 한 잔 마시고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후 차분한 목소리로 다케시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김인후를 소개했다. 수 년 전 김인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유촌 마을에서 함께 지내다 최근에 요양원에 들어가 있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김인후가 엉거주춤 인사를 하는데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김인후는 전화를 들고 얼른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에 전화통화를 끝낸 김인후가 휴게실 문을 열고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그의 얼굴에 몹시 당황한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유리 여사에게 잠시 실례하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아. 이거 큰일 났습니다. 우리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답니다. 사고로 돌아가셨답니다.”

“사고로요? 요양원에 계신 분이 무슨 사고를 당해요?”

나는 사고를 교통사고로만 이해를 했다. 김인후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교통사고가 아니라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거였다.

“우리 작은 할아버지가 살해를 당했다는 겁니다. 저번에 사고를 친 그 노인에게요. 그 노인이 작은 할아버지가 버리고 간 아들이었답니다.”

말을 마친 김인후는 서둘러 박물관을 빠져 나갔다. 나는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자리에 앉아 있는 유리 여사를 바라보았다. 이제 잠시 후면 만날 사람을 지척에서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무슨 일이 있나요?”

유리 여사가 나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안 그래도 지쳐있는 노인에게 더 큰 충격을 안길 수는 없었다. 나는 되도록 알아듣기 쉽게 김재성 노인이 일본에서 돌아온 후에 살아 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