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52)]국화는 서리를 맞으며 피고

2024-11-12     이재명 기자

입동이 지난 지 벌써 5일이나 됐다. 올해는 단풍이 늦게 온다더니 이제서야 도로변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된서리는 내리지 않고 무서리만 마음과 몸을 적신다.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뭇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녁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서 보라/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의 노래(김재호 시, 이수인 곡)


서리와 단풍, 그리고 국화는 한 묶음처럼 같이 온다.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수레 멈추고 앉아 늦단풍을 즐기노라니)/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서리맞은 단풍이 2월 꽃보다도 더 붉구나). 당나라 시인 두목의 시 ‘산행(山行)’의 일부다. 단풍은 서리를 맞아야 비로소 붉게 물든다. 서리는 말하자면 물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무서리 세 번에 된서리 한번’라는 말이 있듯이 조만간 울산에도 된서리가 내릴 때가 됐다. 된서리를 맞으면 모든 식물들은 하루 아침에 시들어버린다. 그렇게 맵고 붉은 고추도 된서리 한방에 물렁물렁해진다. 그래서 임금의 호령을 추상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리를 맞고 오히려 더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이 있으니 바로 국화다. 서리를 맞아 뭇 꽃들이 시들고 난 늦가을에 핀다하여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했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 시를 읊은 이정보(1693~1766)는 조선 문신이었다. 성품이 강직하여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며 바른말을 잘했다. 흔히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도 하는데, 이 오상(傲霜)이란 한자를 풀이하면 거만할 오(傲), 서리 상(霜) 즉, ‘오만한 서리’라는 뜻이다. 여기에 절개를 뜻하는 ‘고절(孤節)’이라는 단어가 붙었으니 굳이 해석하자면 국화는 ‘오만한 서리를 꺾어버리는 기개 높은 꽃’ 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계절은 바야흐로 낙엽 휘날리는 만추(晩秋)다. 은행잎이 땅 위를 노랗게 뒤덮고, 낙목한천에 삭풍이 불어온다. 뒤숭숭한 세상에 오상고절들의 꼿꼿한 자태가 더욱 사랑스러운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