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지원은 하되 간섭은 안 된다
‘프로도 효과’(Frodo effects)라는 용어가 있다. 영화를 통해 얻게 되는 막대한 경제효과를 일컫는 것으로, 지난 2001년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유래했다. 프로도는 이 영화 주인공의 이름이다. 전 세계에 판타지 열풍을 몰고 온 ‘반지의 제왕’ 덕분에 인구가 480만 명에 불과한 뉴질랜드는 낙농업 국가에서 문화관광지로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다. 직접적인 고용효과만 총 3억6000만달러(약 4900억원)였고, 관광산업의 파급효과는 38억달러(약 5조2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의 부산도 영화로 이미지를 바꾼 곳이다. 첫 시작은 지난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로 이제는 국내를 넘어 도쿄국제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와 함께 아시아 3대 영화제로 꼽힐 정도로 세계 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1회부터 큰 성공을 거두면서 1999년 부산영상위원회가 설립됐다.
이후 부산은 본격적으로 영화를 비롯한 각종 영상물의 단골 촬영지가 됐다. 친구, 아저씨, 해운대, 도둑들, 범죄와의 전쟁, 국제시장, 헤어질 결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영화부터 각종 영상물까지 25년간 1877편이 부산에서 촬영했다. 그에 따른 경제효과는 7676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울산은 부산 바로 옆에 위치해 있음에도 사정은 전혀 다르다. 올해 1월 ‘울산의 별’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김금순)과 한국영화감독조합 메가박스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정기혁 감독은 고향이 울산인 아버지와 울산에서 살고 있는 사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주인공은 울산 동구의 조선업 노동자다. 그러나 울산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음에도 영화 촬영 대부분은 부산에서 이뤄졌다. 울산에서는 촬영 협조받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산에서는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동구 슬도 등에서 먼 배경의 조선소를 바라보는 수준에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울산의 별’이 아니라 ‘부산의 별’이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지난 제223회 동구의회 임시회에서 ‘동구 미디어 등 촬영장소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동구가 관리하는 시설뿐 아니라 관내 다른 시설까지 촬영 장소로 활용될 수 있도록 명시하는 등 적극적인 촬영 협조 및 예산 지원 관련 내용을 담았다.
조례안은 건축으로 치면 기초공사에 불과하다. 앞으로 동구가 조례안을 바탕으로 예술의 도시라는 근사한 건물을 짓는 게 훨씬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동구가 공직사회 특유의 딱딱함을 벗고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영화나 방송이 좋은 것만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울산의 별’의 내용은 불편하다. 주인공인 50대 여성 윤화는 남편의 사고사 이후 조선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인물이다. 짧은 머리와 거친 말투, 수시로 담배를 피운다. 갑작스럽게 정리 해고 대상이 되고, 아들은 그녀 몰래 전 재산을 비트코인에 투자한다. 또 딸은 학업은 뒷전인 채 서울로의 탈출만 꿈꾸고, 친척들은 ‘남편 잡아먹은 여자’라 욕하며 땅을 빼앗으려 한다. 과거 조례가 있었더라도 이 영화가 동구의 촬영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동구에 필요한 것은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전 세계 문화예술 공공 정책의 기조로 널리 쓰이고 있다.
예술은 창의성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개인의 개별성과 집단의 다양성을 끌어내어 사회에 자극을 준다. 종종 일반인들이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 담길 수밖에 없다. 때문에 동구가 영화, 방송을 통해 도시의 이미지 개선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용을 지원 잣대로 삼는 것을 금지하고, 제약 없이 촬영 편의를 제공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임채윤 동구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