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123]]13부. 흐르는 물(14) - 글 : 김태환
유리 여사는 장소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전시실에 있는 오영수 문학관 관장을 불러 들였다. 오영수 소설가의 무덤이 문학관 윗쪽의 화장산에 있으니 혹시나 오래된 일본인 무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을까 해서였다.
“묘지가 없는 무연고 묘는 더러 있지만 일본인의 무덤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 산에 한번 가보고 싶어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유리 여사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내친 김에 마츠오의 주검에 대해서도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탁자 위에 놓인 붉은 돌도끼를 가리키며 유리 여사에게 말했다. 이 돌도끼가 바로 당신의 아버지 마츠오를 살해한 흉기였다고. 그리고 살해당한 장소가 바로 천진리 서석문 앞이었다고 가르쳐 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아버지가 살해당한 장소에 우연히 오게 되었지만 뭔가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던 것은 당연했던 것 같았다.
“아아. 그랬었군요.”
유리여사의 입에서 신음소리 같은 일본어가 나지막하게 흘러 나왔다. 나는 서석문 암각화에 같이 가보겠느냐고 의사를 물었다.
“안 그래도 개막식이 끝나고 그곳에 가려던 계획이었습니다.”
박물관 관장이 대신 대답했다.
우리는 각자 차를 나누어 타고 천전리 서석문으로 향했다. 한 겨울이라 그런지 서석문을 찾아오는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입구의 안내실에도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안내를 중단한다는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고령의 유리 여사를 배려해 차가 닿을 수 있는 개울가까지 갔다. 차에서 내려 50미터만 가면 바로 천전리 서석문 암각화였다.
나는 김용삼을 불러 유리 여사의 한쪽 팔을 잡도록 했다. 김용삼의 할아버지 김일환이 유리 여사의 아버지인 마츠오를 이곳에서 살해 했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천전리 암각화 앞에 모인 사람은 스무 명이 넘었다. 유리 여사는 암각화 맞은 편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가지고 온 붉은 돌도끼를 공중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오천 년 전의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붉은 돌도끼는 태화강 물줄기의 상류인 미호천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미호 마을을 상징하는 표식이었다. 미호 마을의 사흘이라는 남자가 암각화에 글자를 새기고 있었다. 그가 왼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붉은 홍옥석을 갈아 끝을 뾰족하게 만든 붉은 정이었다. 오른 손에는 소나무 옹이를 이용해 만든 나무망치가 들려 있었다. 나무망치로 붉은 돌정을 두드릴 때마다 미세한 돌가루들이 떨어졌다.
내 귓속에서 KTX고속열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우루루하고 들려왔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맨 가운데 유리 여사가 간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주위에 박물관 관장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둘러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