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124]]13부. 흐르는 물(15) - 글 : 김태환
아내와 김동휘도 나란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붉은 돌도끼를 들고 서석문 앞에 나지막하게 설치 된 철책을 넘어섰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내가 임의로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 앞에 서 있는 김용삼씨의 할아버지가 일본인 순사 마츠오에게 전해 준 이야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75년 전 여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나는 김재성 노인의 기록대로 서석문 맨 꼭대기에 있는 다섯 개 겹마름모꼴 문양부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을 읽었고 번역까지 했던 터라 이야기의 요지는 충분이 암기하고 있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내가 하는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가끔씩 이야기를 하면서 아내와 김동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둘은 어느새 친자매처럼 가까워졌는지 두 손을 서로 맞잡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유리 여사를 바라보니 얼굴에 완전히 혈색이 돌아 소녀처럼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다. 자신이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했던 내용이 내 이야기 속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한 문양에 손을 대고 한 토막의 이야기를 이어갈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은 내 입과 문양을 번갈아가며 집중했다. 내 손이 문양에서 떨어지면 잔뜩 긴장하는 것 같았다. 다음에는 어떤 문양을 지목할까 자신들이 더 긴장하는 것 같았다.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목이 껄끄러워 목소리가 갈라져 나오기도 했다.
김은경 시인이 자신의 배낭 안에 들어 있던 생수병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생수병을 받아 단숨에 반 병 넘게 물을 들이켰다. 물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상체를 일으켜 다음 문양을 바라보는데 고속열차 지나가는 소리가 우르르 들려왔다.
이곳에서 고속철도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올 리가 없는 데 이상한 일이었다.
소리는 유촌 마을 김인후의 집에서 밤중에 들었던 것과 똑같았다. 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잠깐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