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속의 꽃(21) 박꽃]새벽녘 지붕의 반짝이는 별처럼

2024-11-19     경상일보

박은 박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식물로 인가 부근에 서식한다.

원산지는 아프리카 등 열대지방이지만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박처럼 생긴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널리 심었음을 알 수 있다.

줄기가 짧은 털로 덮여 있고 덩굴을 이루어 다른 물건을 감싸며 자란다.

둥근 열매는 크기가 10~30㎝, 무게는 5~6㎏ 정도이며 속껍질은 반찬으로 쓰고 과육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며 겉껍질은 바가지로 쓴다.

꽃은 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 흰색으로 핀다. 박꽃의 수수한 아름다움을 사랑한 시인은 박지원이다. 다음은 그의 ‘새벽길’이라는 시다.

까치 한 마리 외로이 수숫대에 잠자는데
달 밝고 이슬 희고 밭골 물은 졸졸 우네.
나무 아래 오두막은 바위처럼 둥근데
지붕 위 박꽃은 별처럼 반짝이네.

一鵲孤宿薥黍柄(일작고숙촉서병)
月明露白田水鳴(월명노백전수명)
樹下小屋圓如石(수하소옥원여석)
屋頭匏花明如星(옥두포화명여성)


이슬이 희다고 했으니 절기상 백로(白露)인 9월 초이고 시간상 새벽이다. 까치도 잠자고 물소리만 들리는 새벽, 둥근 달이 뜬 둥근 초가지붕 위에 핀 박꽃이 별처럼 반짝인다고 한 시상이 참신하다. 박꽃은 작고 수수하여 낮에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런 박꽃의 아름다움은 달밤에서야 확인할 수 있다. 박지원은 박꽃을 유난히 사랑한 시인이다. 비록 보잘것없고 초라하지만 넝쿨이 뻗어 열리는 박 한 덩이가 여덟 식구를 먹일 만하고, 박을 타서 그릇을 만들면 두어 말 곡식을 담을 수 있다면서 박꽃이 비록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쓸모에 있어서는 여느 화려한 꽃보다 낫다고 하였다.

박꽃은 주로 초가지붕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요즘은 박꽃의 자리인 초가집이 사라지면서 그나마 사람들 눈에 안 띄던 박꽃을 더욱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안순태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