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多事多感(21)]11월에 권하는 지도 밖의 독서 여행
11월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목재가 단단하고 곧은 겨울 숲의 자작나무 군락처럼 힘차게 펼쳐진 11이 아니라, 상처뿐인 1과 1이 허리를 웅크리고 다리를 절며 걸어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요즘 선배들을 만나면 80대는 인생이 시속 80㎞로, 70대는 시속 70㎞로 달아난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빠른 인생의 속도에 망가지고 부서진 시간이 11월에는 패잔병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멈출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길이 있는 한 계속 걸어가야 하는 것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시간은 균등하게 흘러가는데 그 속도가 갈수록 빠르다고 느끼는 것은 지금 인생에서 꿈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꿈의 무게가 빠져나간 인생은 속도에 밀려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청춘이든 베이비붐 세대든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꿈은 인생의 시계추처럼 우리를 바르게 흘러가게 만들어 줍니다.
저는 사는 일이 답답할 때면 세계지도를 펴고 못다 꾼 청춘의 꿈을 펼칩니다. 그 꿈에는 국경이 없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방문하는데 항공기는 물론 여권이며 비자가 필요 없습니다.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달려보고, 유라시아 대륙을 달려봅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합친 ‘유라시아’(Eurasia)를 이제는 하나의 대륙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좀 더 꿈의 크기를 넓게 보면 이는 또 ‘아프로·유라시아’(Afro-Eurasia·Afroeurasia) 의 일부입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대륙의 통합 명칭입니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는 이미 수에즈 지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관점에 따라서는 북아프리카까지 유라시아 일부에 넣기도 합니다. 아프로-유라시아를 하나의 대륙으로 취급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대륙이 됩니다. 여기에 지구 인류의 약 85%가 살고 있습니다. 지도를 펼쳐 보십시오. 지도의 크기는 꿈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꿈을 꾸지 않는 자는 결코 지도 밖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지 못합니다.
요즘 저의 꿈은 이베리아반도의 역사와 함께해 온 포르투갈을 찾아가는 여행입니다. 그곳에, 선사시대에 이동해 온 켈트족 문화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의 속주가 되어 ‘루시타니아’(Lusitania)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입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들어온 게르만계 서고트족은 포르투갈에 기독교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저의 여정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기 전에 당신이 읽어야 할 11월의 책이 있습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난 소설가며 철학자인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필독서입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포르투갈 말로는 ‘리스보아’(Lisaboa)로 부르는 이 도시는 포르투갈 최대의 항구도시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7년 처음 출간됐습니다. 가히 ‘현대고전’입니다. 독일 최고의 철학 부문 에세이에 수여하는 ‘트락타투스상’을 수상한 ‘파스칼 메르시어’의 감각적이고 유려한 문체에 지은이가 소설의 토대에 쌓아 올린 지적인 사유가 단연 돋보입니다. 당신이 다 읽어낸다면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리스본에 잘 찾아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할 것입니다. 저는 소설의 주인공이 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탔는지, 리스본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어 갔는지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당신의 몫입니다.
당신이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오신다면 저는 리스본에서 이어지는 바다인 ‘피니스 테레 곶’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에스파냐 서쪽 끝, 북위 42˚54’, 서경 9˚16’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겠습니다. 100㎞에 이르는 긴 바다, 리아스식 해안이 이어지는 그곳에서 한반도 동쪽에서 뜬 해를 굴리며 찾아오는 당신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아시아의 동쪽에서 그곳까지가 유라시아 대륙의 넓이이며 당신이 꿈꾸는 꿈의 폭입니다. 그렇다고 결코 지도에 갇히지 마십시오. 누군가의 말처럼 ‘지도 밖으로 행군해 나가길’ 바랍니다. 그것이 당신이 가진 꿈의 크기며 지도의 넓이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당신의 인생입니다. 건강하시길 빌며. 총총.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