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어떤 예산의 삭감 논의에 대한 단상
지난 11월20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타 아트홀에서 열린 천고법치문화상 시상식에 참석하였다. 수상자 셋(단체 2, 개인 1)중에서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에 대한 수상 사유가, 확산되고 있는 마약범죄를 퇴치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 달라고 독려하는 의미도 담았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보통 시상이나 포상은 그 간의 공적에 따라 주어지기 때문이다. 천고법치문화재단(天古法治文化財團)은 10여년전부터 매년 법률신문사와 함께 법치 수호와 법치 문화 창달에 기여한 인재와 단체에 법치문화상을 수여해 왔다.
마약 범죄나 조직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려면 경찰 검찰 등 수사 주체의 역량과 노력에 더하여 이를 뒷받침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필자도 과거 검찰 재직시 강력부에서 직접 조직범죄를 인지 수사한 경험이 있어 사정을 안다. 특히 마약범죄 수사는 장기간에 걸친 정보 수집과 증거 확보, 범죄자 체포 외에 함정수사 등의 공작도 필요하다. 상당한 수사비가 소요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최근 국회의 예산 심사에서 검찰과 감사원 등의 특수활동비나 특정업무경비가 삭감되었다고 한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야당의 주도로 전액 삭감된 상태로 예결위로 넘어갔는데 어떻게 진행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검찰이 야당 대표를 수사하여 기소하는 등 야당에 밉보인 것이 삭감의 원인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필자가 검사로 임관하였던 1985년 이래 1990년대 중반까지 검사에 대한 수사활동비의 지급은 거의 없었다. 특수·강력범죄(부패·마약·조직폭력 등)의 수사, 소위 인지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며칠간 밤새워 조사하고 압수·수색하고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는 수사 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은 대부분 밥값이다. 소환된 참고인들과 수사 담당 직원들의 밥값은 수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늘어난다. 과거 어떤 선배 검사로부터 월급이나 심지어 대출을 받아 수사비를 조달하였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여지지만 예전에는 어쨌든 수사비 지원이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비로소 수사활동비가 지급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바로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다.
전투에 나간 병사들에게 보급은 필수적이다. 병참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면 전투력이 발휘될 수 없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수사도 마찬가지다. 수사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수사 주체들의 사명감만으로 부족하다. 수사 주체의 역량이나 노력을 뒷받침해주는 물적 지원은 필수적이다.
정보·수사기관의 특수활동비는 사용자의 재량을 넓게 인정해 주는 예산 항목이다. 현재 검찰의 직접 수사기능이 축소되었다고 하지만 부패 범죄나 마약·조직 범죄 등에 대한 수사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마약 범죄는 마약에 대한 수요 증가와 공급선 확대 및 거래 채널의 확장 등 확산 추세에 있어 더욱 그러하다.
예산은 정부에서 편성하여 국회의 심사를 거쳐 확정되는 나라의 살림살이다. 올바른 예산의 책정과 집행은 정상적인 정부 기능을 담보한다. 예산은 재원인 세입이 필요한데 이는 개인이나 기업이 부담하는 국민의 혈세다. 그래서 예산에 대한 국회의 심사는 매우 중요하고 감시 감독의 필요성 또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활동비 등을 없애 국가 기능인 검찰권 행사에 지장을 주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예산을 하루아침에 없애는 방법으로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교각살우다. 오히려 각종 보조금 등 농업 지원 예산이나 도로 항만 공항 등 공공 건설사업 예산의 비효율성 등에 심사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나라의 곳간이 새지 않도록 하는 국회의 예산 심사를 감정적 정략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수활동비 등의 예산 삭감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하에 이루어져야 할 일로서 국민의 대표기관이라고 해서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박기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