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의 한 수는 없다
바둑은 인생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승패가 갈리는 바둑판에서 중요한 것은 ‘수(數)싸움’이다. 인생의 선택지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과 같다.
한국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조훈현 9단의 저서 <고수의 생각법>에서 그는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 속으로 걸어가라’고 일갈한다.
바둑의 원칙들이 삶의 지혜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바둑에서의 수싸움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 눈앞의 작은 승리에 집착하지 않고 큰 그림을 그리며 최적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위기십결의 첫 번째가 ‘부득탐승(不得貪勝)’인 이유도 여기에 있고, 사소취대(捨小就大)도 마찬가지 이유다.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또 바둑판의 흐름을 이해하려면 상대의 의도를 읽고 현재의 판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중요한 시점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패배하게 된다. 인생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고수의 생각법>에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지혜를 던진다. 작은 선택 하나도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남의 생각을 물으며 눈치를 보는 이들이 늘어가는 시대에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라는 조언은 소중한 가르침이다.
‘비인부전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承德)’. 사람됨에 문제가 있는 자에게 벼슬이나 재능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중국 5호16국 시대를 풍미한 명필 왕희지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말이다.
조 9단이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열다섯 살 때, 바둑과 영영 이별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프로 입단을 통과한 후 ‘후지사와연구회’에 참가했는데 아베 요시테루 6단을 만난 것이다. 요시테루 6단은 그 당시 2단이었던 쿤켄(훈현의 일본식 발음)에게 내기바둑을 요청했다. 연구회에서 도박과 내기바둑은 금기였다. 요시테루 6단의 집요한 요구를 지켜보던 후지사와 선생이 거들고 나서 결국 내기바둑을 두게 됐다.
조 9단이 내리 세 판을 이기자, 독이 오른 요시테루 6단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여섯 판까지 이기고 나서야 내기바둑이 끝났다. 며칠 후 조 9단의 스승인 세고에 선생이 내기바둑을 둔 사실을 알고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 너는 바둑을 공부할 자격이 없다. 나와의 인연은 오늘로 끝이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쳤다.
다행히 열흘쯤 지나 세고에 스승이 화를 풀어 다시 돌아가면서 2주 동안의 파문은 끝났다. 문제는 재주가 아니라 인품이었다. 조 9단이 1인자가 될 재주가 있다는 것을 간파했던 스승은 바둑 명인에 걸맞은 인격과 품성을 갖출 수 있도록 혹독하게 수련시키려 했던 것이다. 더 이상 제자를 들이지 않기로 결심했던 스승이 죽음에 가까운 나이에 조 9단을 받아들였던 이유는 바로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었다. 단지 몇백 엔의 내기바둑이었지만, 그때 혼내지 않으면 그것이 훗날 큰 인격적 결함으로 자랄 수 있었기에 미리 혼을 낸 것이었다.
오래 걸으려면 좋은 신발이 필요하듯 오래 살려면 좋은 인연이 필요하다. 포장지가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에 버려지듯이 남의 들러리로 사는 삶은 결국 후회만 남는다. 바둑의 고수는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유연성을 유지한다. ‘신의 한 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세상이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생지옥 아닌가?’ ‘신의 한 수’를 관통하는 이 한마디에 당신은 동의하는가?
조 9단은 성공과 실패를 단순한 결과로 보지 않고 과정에서 배울 기회로 해석했다. 그는 “성공이란 승리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묘수 세 번이면 진다’는 바둑 격언이 있다. 묘수를 거듭해야 할 정도면 어려운 국면이라는 방증이다. 신의 한 수는 없다. 있다면, 조 9단의 말처럼 과정을 정당하게, 정의롭게 행하는 것뿐이다.
김종대 울산시 대외협력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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